Marisa Dal Santo에게 무슨 일이 있던 거지?

marisa, 2017 / photo: oscar ladd

 

2000년대 중반 어렸을 때 보드를 타면서, 내가 알던 여자 스케이터는 Elissa Steamer 딱 한 명이었어.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매년 여름 TV에서 X-Games이 나올 때마다 보던 Marisa Dal Santo도 있었어. Zero나 Emerica 같은 멋있는 스폰서가 있었던 것 같은데, TV에서 X-Game을 하고 있을 때만 볼 수 있었던 것 같아.

Marisa는 절대 유치한 콘테스트 스케이터처럼 보이지 않았어. 찢어진 청바지에, Chigago Bears 저지, 커다란 Emerica 신발, 존나 펑크였지. 2009년 Zero의 Strange World에 그녀의 풀 파트가 들어갔다는 걸 들었을 때 엄청 신났었어. 드디어 우리가 기다리던 그녀의 스트리트 파트를 볼 수 있겠구나 싶었고, 이제 프로 데크도 나오겠구나 싶었어. 그런데 Strange World 이후, Marisa는 다시 콘테스트 서킷으로 돌아갔고, 대부분 스케이터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졌어.

그리고 작년, Zero의 20주년을 맞아, 그녀의 이름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어. 그녀와 인터뷰할 구실을 찾았다는 게 기뻤어. 왜 스케이트보드 역사상 가장 멋있었던 여성이 갑자기 사라졌는지도 물어봐야지.


 

2000년대에는 스폰을 받는 여성 스케이터가 별로 없었는데. 스스로 token girl skater(여자 커뮤니티에 어필하기위해, 혹은 여자라서 회사에서 구색 맞추기로 스폰을 해주는 거)라고 느꼈었어?

아니, 전혀.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한 적 없어. 난 그런 사람들이 생각하는 “여자”인 적이 한 번도 없었어. 항상 남자들과 보드를 타면서 컸고, 여자 사람 친구가 한 명도 없었어. 여자애가 보드를 타는 건 멋있지만, 그거 외에 그 나이 또래의 여자들이 하는 모든 것들이 다 나한텐 구려 보였어. 사실, 내가 몇 안 되는 여자 스케이터라는 게 자랑스러웠지.

투어 밴에서 유일하게 여자였을 텐데, 제일 짜증 나는 게 뭐였어?

보통 나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들이랑 밴에 있었는데, 여자랑 섹스한 이야기를 해. 그거 때문에 불편하진 않았는데, 내가 모르던 세계였어. 아마 그게 제일 짜증 났던 것 같아.

호텔에서 남자들이랑 같은 화장실 쓰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어?

아니, 신경 안 써. 뭐 그런 거지.

남자들이 밴에서 오줌도 싸고 그렇지 않았어?

당연하지. 큰 물통이나 게토레이 병에다가 오줌을 싸. 걔네들은 계속 맥주를 마시는데, 나는 못 마셔서 아쉬웠어. 만약 나도 맥주를 마시면, 난 나가서 화장실을 써야 하니까 너무 피곤하잖아. 그래서 그냥 걔네들이 맥주 마시고 놀면서 병에다가 오줌 싸는 걸 보기만 했어. 난 한 번도 밴에서 오줌을 싼 적 없어. 너무 피곤해질 거야.

동창회 여왕으로 뽑힌 marisa, 2004

 

고등학교 동창회에서 여왕으로 뽑혔다며?

세상에. 맞아. 그랬어.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어?

전혀 생각도 못 했어. 친구들이 날 후보에 올려놓고, 내가 여성스럽게 입은 걸 보려고 나한테 투표했거든. 난 평생 같은 스타일 옷만 입었고, 그런 거에 관심이 없었어. 아웃사이더에 보드만 탔지. 다른 후보들은 다 치어리더에 발리볼 선수였어. 전형적인 동창회 여왕 스타일. 주최 측은 내가 뽑혀서 좀 어이가 없었을 거야. “학교를 잘 대표하지 못한다”라는 말을 들었어.

동창회 왕으로 뽑힌 사람이랑 춤도 췄어?

아니, 동창회 왕은 없었어. 대신 좆구린 축구 경기에 가서, 학교 마스코트 인형이랑 껴앉았어야 했어. 왕관이랑 띠를 줬는데 너무 유치하고 구렸어. 마을을 지나가는 퍼레이드에 올라가서 애들한테 사탕을 던졌어. 난 친구가 별로 없었는데, 그 몇 안 되는 내 친구들이 그거 봤으면 미쳤을 거야. 동창회 댄스 타임에 난 다른 여자 참가자들이랑 무대 뒤쪽에 있었어. 마지막에 내 이름이 불리고, 난 관중들 짜증 나게 하려고 소리 지르면서 무대로 나갔어. 좆도 신경 안 썼거든. 그리고 무대에서 내려와서, 카프리썬 한잔 하고 집에 갔지.

marisa 2017 / photo: coburn huff

 

최근에 너의 Zero 데크가 다시 나왔고, Best 영상도 나왔잖아. 어떻게 된 거야?

Zero의 20주념 기념으로 게스트 보드가 나온 거야. 갑자기 그렇게 됐어. 캘리포니아로 가서 Zero 사무실에 들렸는데 Jamie가 있었어. 오랜만에 Jamie랑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걔가 내 친구들한테 “Marisa를 프로로 하자고 제안했던 게 나인 거 알지.”라고 했어. 게스트 보드도 그의 말에서 시작됐어. 실제로 나오리라고 생각 못 했는데, 계속 연락하면서 술술 풀렸지. 그 영상 파트도 내가 한 거 하나도 없이 쉽게 됐어. The Reed Video에 쓰였던 비교적 최근 영상이랑 아주 어릴 때 영상을 써서 덜 진지하게 만들었어. 아무것도 안 하고 주목받는 거 존나 좋더라.

그럼 너 Zero에서 한 프로 제안을 거절했던 거야?

응. 그냥 별로 하고 싶지 않았어. 당시에 이미 “계속 보드를 타면 이 캘리포니아에 갇혀 버리겠지.”라는 생각을 종종 했어. 난 그냥 장난치면서 친구들이랑 놀고 싶었던 거지, 더 이상 보드에 내 인생을 바치고 싶지 않았어. 그런데 이미 내 이름이 프린트된 데크가 있네? [웃음] 평생 운 다 쓴 거지.

게스트 보드 로열티를 받아?

처음 착수할 때 돈을 받았어. 어쩌면 또 돈을 받을 지도 모르는데 아직 Jamie랑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 언젠가 다 팔리면 그때 또 돈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Jamie한테 따로 전화하기는 싫어. 지금 TM이 된 내 친구한테 이야기해야지.

marisa 2017 / photo: oscar ladd

 

Zero 팀에 들어갔을 때 돈 받았어?

조그만 인터뷰를 했을 때 한 번 돈을 받았어, 아마 Zero 셔츠를 입고 있었던 것 같아. 그런데 주기적으로 제대로 돈을 받진 않았어. 좀 이상한 시절이었어. 나만 돈을 안 받은 게 아니었거든. 줄줄이 사람들이 떠났지. 잘리거나 그만둔 거야. 팀에서든 일하는 창고에서든. 아마 그땐 제대로 돈을 받고 있던 사람이 없었을걸.

Zero가 좀 어려웠던 시기였던 것 같아. Black Box 디스트리뷰션은 거대했는데, 하향세에 조금씩 예산을 삭감하면서 사람들을 잘랐어. 난 Zero에서 일반적인 웰컴 영상 같은 걸 기대했었는데, 한 번도 광고 같은 거나 그런 걸 한 적도 없었어. 아마 Zero가 돈이 없었거나, 내가 B팀이었을 지도 모르지. 사실 Chris Cole이나 Tommy Sandoval 말고 모든 사람이 다 B팀이었지 [웃음].

2009년에 너의 Strange World 파트가 나왔는데, 진짜 좆 되는 파트였던 것 같아. 그거 찍으면서 이런 반응을 예상했어?

아니. 사실 파트를 만들게 될 거라는 것도 예상 못 했어. 내가 사람들이랑 필르밍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Jamie가 쓰고 싶은 노래가 있냐고 물어보는 거야. 그래서 그 Stranglers의 노래를 줬어. 그땐 비디오를 만들기 시작하는 단계였고, 그냥 생각만 하던 때였어. 세 달 뒤에, Jamie가 사무실로 날 부르더니, 그 노래에 내 영상을 편집해서 보여줬어. 믿을 수가 없었어. 내가 씨발 Zero 영상에 들어가다니, 거의 눈물이 날 정도였어. Misled Youth가 내가 거의 처음 봤던 스케이트보드 영상이었거든. 영상이 출시되기 직전이었고, 내 파트가 완성됐던 거야. 그러더니 Jamie가 이러더라. “좋아, 이것들은 다른 걸로 대체하고, 이건 다시 타고, 이건 필르밍을 다시 해.” Jamie가 나한테 스케이트보드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난 엄청 위축됐거든, 그래서 그대로 했지. 그렇게 풀린 것 같아.

부러진 발로 한 크룩, 2009

 

마지못해서 다시 필르밍 했어?

뭐 그렇지. 롱렌즈로 찍은 한 트릭이 있었는데, Jamie가 그걸 어안으로 찍으면 더 멋있을 거라고 하는 거야. Carsbad에 있는, 중간에 나무가 있는 갭인데, 내가 에어워크를 하면서 나무를 발로 찼거든. Jamie 탓해서 걔를 병신 만드려는 건 아닌데, 다시 필르밍했는데 진짜 오래 걸렸어. 3년이 지나고 다시 하려니까 안되는 거야. 어안으로 다시 찍으려고 서너 번 갔어. 그런데 결국 그걸 쓰지도 않더라. 어이없었지.

회사에서 자기 스케이터한테 필르밍을 다시 하라는 게 원래 흔해?

그렇지 않을걸. 나쁘게 말하려는 건 아닌데, Jamie는 자기가 깔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클립들은 다시 필르밍하라고 한다고 여기저기서 들리더라. 사람들의 잠재력을 보고, 더 잘할 것 같으면, 주저 없이 다시 하라고 했던 건데, 난 그게 존나 싫었어. 난 한 번 랜딩했으면 한 거고, 절대 다시 안 해. 다시 하다가 죽거나 다치는 거야.

한 번은 일자로 뻗은 레일에 크룩을 걸었어. 조금 깔끔하지 않게 랜딩을 했는데 그때 내 발이랑 발목이 부러져 있었거든. 친구 Matt가 “이 클립을 Jamie한테 허락받으려면 다시 찍어야 할걸.”이라고 했어. 엄청 스크레스 받더라. 씨발 지금 장난하는 거야? 그런데 아드레날린이 이미 분출하고 있던 상황이었어. 다행히 다시 랜딩을 했고 그걸 사용할 수 있었어. 하지만 5개월 동안 보드를 못 탔어.

Zero를 떠난 이유가 뭐야?

난 22살이었고 당시에도 의욕이 있었거든. Wallenberg에서 손목이 부러졌지만 수술을 하고 다시 용기가 생기고 있던 때야. San Diego를 가서 내가 전에 10번이나 해봤던 레일에다 fs 보드슬라이드를 걸려고 했어. 몇 번 시도하다가 한 번 레일에 걸렸어. 그리고 다음 시도에서 내가 팝을 안 친 거야. 레일에 점프했다가 뒤로 떨어졌어. 다른 쪽 손목도 부러졌고, 그게 끝이었어.

“스케이트보드 좆까라 그래, 다시는 핸드레일 안 타. 하기 싫은 거를 하려고 압박받는 것도 이제 지긋지긋해”라고 느꼈어. 그리고 8개월 뒤에 Zero를 나갔지.

그리고 잠적해서 떨을 존나 피우기 시작했어. 폰을 꺼놓고 모든 연락을 끊었어. 다시 그냥 친구들이랑만 보드를 타고 싶어졌어, 집에 가고 싶었지. 아마 스스로 이걸 계속하고 싶은지 생각할 시간을 갖고 싶었나봐. 그런데 그러지 못했어. 어느 날 그냥 Jamie한테 그냥 그만두겠다고 이야기했어. 그리고 그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어깨에 있던 그 무거웠던 짐이 바로 사라지더라.

marisa 2017 / photo: oscar ladd

 

캘리포니아를 떠나서 어디로 갔어?

시카고에 있는 부모님네에서 살다가 덴버로 갔어. 마음먹고 간 건 아니었어. 친구가 몇 명 거기 살았고, 그중 일부가 떨을 재배하는 애들이 있었거든. 시카고의 겨울에서 벗어나서, 떨 재배를 좀 하면서 돈을 모아 여행을 다니고 싶었어. 그런데 거기 말뚝 박게 됐지.

떨 재배할 때 넌 뭐를 하는데?

떨이 다 자라서 수확할 때가 되면, 잘라서 걸어놓거든. 그리고  말릴 때 곰팡이가 쓸지 않도록 큰 잎사귀는 제거해. 그다음, 떨 덩어리가 있는 가지들을 따다가 바구니에 넣고 며칠 놔뒀다가 끈적끈적한 덩어리들을 꺼내. 매니저는 일리노이 오로라 출신 Juggalo(Insane Clown Posse의 광팬 집단. – 땡큐젠켐)였어. 다들 하이 상태였지.

그 Juggalo 떨 매니저가 “웁 웁“이라고 외치기도 했어?

재배실에서는 그런 적 없어. 그런데 밖에서는 분명히 할 거야. 자기가 얼굴에 분칠을 하고 Faygo 소다를 뿌려대는 걸 이야기한 적 있어. 전형적인  Juggalo스럽지. 한 번도 Juggalo랑 실제로 가까이 지낸 적이 없었는데, 여기 떨 업계를 Juggalo가 지배하고 있다고 하더라.

떨 재배하던 시기를 지나서, 이제는 무슨 일을 해?

Etsy에서 GenXtravaganza라는 샵을 운영하면서 빈티지 옷을 팔고 있어. 평생 벼룩시장을 다녔고, 쓰레기 더미에서 다이아몬드를 찾는 거에 미쳐있거든. 진짜 멋있는 걸 찾아내기도 해. 친구가 제안해서 시작했던 거야. 항상 나한테 안 맞는 옷을 샀었는데, 그것들을 빈티지 가게에 팔려고 가져가니, 가게에서 Etsy를 이야기해줬어. 좀 알아보고, 이제는 그게 내 일이 됐어. 4년 반 동안 풀타임으로 그 일을 해왔어.

strange world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트릭, 2009

 

가끔 스케이트보드 대회에도 나갔었잖아, 그치? 제일 마지막 대회가 언제였어?

아마 2년 전 이맘때쯤이었던 것 같아. 2015년 시카고에서 열린 Street League에 나갔어. 최초의 여자 Street League였어. 바로 다음 날, 남아프리카로 날아가서 Kimberley Diamond Cup에 나갔지. 그게 마지막이었어.

전성기 때 그런 대회에서 이기면 얼마 평균 얼마를 벌어?

이기면, 많이 벌어. 평균적으로 다섯자릿수의 금액을 받아, $10,000에서 $40,000 정도. 당시에 꽤 잘 했었어. 지쳐서 그만두기 전까지, 대부분 대회에서 3등 안에 들었어. $40,000이 아마 제일 큰 상금이었던 것 같고, 지금까지도 그 정도를 받긴 힘들 거야. 덕분에 그때 부모님한테 손을 벌릴 필요가 없었으니 꽤 운이 좋았지. 혼자 해결했었으니까. 그래도 그 돈을 조금 남겨놔서 저축해뒀으면 더 좋았을 텐데.

비정기적으로 그렇게 큰 금액을 벌면, 어떻게 지출 계획을 세웠어?

전혀 세우지 않았었어. 비싼 차 지르면서 흥청망청 쓴 건 아니지만. 난 20, 21살이었고, 첫 집을 구했었어. 방세를 내고 매일 밥을 사 먹고 그랬지. 요리나 지출 계획 같은 걸 신경도 안 썼거든.

danny way의 메가 램프에서 미끄러지는 marisa / photo: bart jones

 

대회에 다시 나갈 생각은 없어?

아마 없을 거야. 대회가 무서워져서, 그걸 기다리지 않게 됐거든. 그냥 돈을 버는 수단이었을 뿐이야. 직업 같은 거였지. 대회 덕분에, 캘리포니아에서 오랫동안 직업 없이 살 수 있었어. 대회에 같이 참가했던 다른 여자 스케이터들과 아주 좋은 친구가 돼서, 그냥 그 친구들이랑 다시 놀고 싶을 뿐이야. 이젠 많이 달라졌어, 완전 미니 올림픽이야. 내가 처음 X-Games에 나갔을 땐 여자는 8명 밖에 없었거든. 이제는 20명이야. 그리고 당시 우리보다 훨씬 빡센 애들일 걸.

스케이트 대회에서 남자와 여자 부분을 합쳐야 할까?

대회에 나가보기 전에는 “씨발 왜 여자 대회를 따로 해놓은 거야”라고 생각했어. 합쳐야 된다고 생각했었지. 그리고 Tampa AM에 나갔었거든. 요즘만큼 미친 정도도 아니었는데, 난 걔들에 비하면 별로였어. 나는 존나 단순하게 타는 블루칼라 스케이터야. 다른 사람들이 스위치 트레로 계단을 다운할 때, 난 차라리 킥플립으로 다운을 해.

남자들이랑 경쟁할 수 있는 여자 스케이터가 과연 등장할까? 장담하는데 그럴 수 없어. 내가 19살이었다면, “씨발 당연하지, 여자도 남자가 하는 걸 다 할 수 있어!”라고 했겠지. 난 지금 30살이고, 더 이상 알리를 높이 뛸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있어. 30살의 남자가 하는 걸 난 할 수 없어. 뭐 나만 그런 것일 수도 있지. 싸가지 없이 말하기 싫은데, 남자 호르몬의 문화가 있다고. 남자들은 매조 키스트 같아. 얼굴을 처맞고 다치는 걸 좋아한다고. 스케이트보드에서 여자들은 정신적인 장벽이 더 높아. 남자들은 마초가 돼야만 하고 겁쟁이가 되면 안 되지만, 여자는 겁을 낼 수도 있거든. 거기서 장벽이 생기는 거야. 그래도 이제 난 대회를 나가지도 않는데, 뭐 별로 신경 안써.

 


출처: http://www.jenkemmag.com/home/2017/12/05/happened-marisa-dal-santo/
<WHAT HAPPENED TO MARISA DAL SANTO?>, 2018.12.5.
Interview: Larry Lanza
Photos: Oscar Ladd and Bart Jo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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