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vin “Spanky” Long의 재림


photo courtesy of emerica

처음 섹스를 한 상대를 잊어버리지 않듯이, 처음 본 스케이트보드 영상도 잊을 수가 없지. 난 그게 Baker 3였어. Morrissey의 노래 때문인지, 멋있게 생겨서 인지, Spanky의 트릭 초이스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의 파트를 계속 돌려봤었어. 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파트를 보고 나면 항상 집 앞의 커브를 타고 싶어졌고 내 구린 매뉴얼을 막 하고 싶어졌었어. 내가 12살 때였어.

그때부터 Spanky의 커리어를 계속 관심 있게 따라왔지. 인터넷에 풀린 짧은 클립부터 파트에서 나온 영상들까지 말이야.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내 어린 시절의 우상은 심각한 화상 사고를 당하고 말았고, 결국 잠시 동안 Baker에서 프로 자격을 잃어버렸어.

2016년 말쯤에 나왔던 그의 컴백 영상 Emerica의 Made 2 뒤로, 내가 기대하던 복귀를 성공했어. 자기 관리를 하고 다시 보드를 타면서 스스로를 동기부여하기 위해서 새로운 접근을 하고 있어. 그런 그와 그간 커리어의 정점과 굴곡들,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직접 내가 이야기 나눌 수 있다니, 내가 12살로 돌아간 것같이 신이 나더라고.


몇 년 전 그 끔찍했던 화상 사고를 겪으면서, 회복하기 위해서 어쩌다가 흑인의 피부를 이식했던데, 스스로 흑인 같다는 느낌이 들어?

[웃음] 응, 여전히 느껴져. 그 모든 경험이 너무 초현실적이고 미친 거였어서, 그 요상한 걸 그냥 웃어서 넘기려고. 몸통 전체에 3도 화상을 입어서 처음에는 치유를 돕기 위해 사체 피부(죽은 사람의 피부)를 내 부상 부위에 이식했었어. 처음에는 내 피부가 마치 그 피부를 받아들이겠다는 듯이 그 부위가 살이 돋기 시작하는데, 결코 그 피부를 받아들이진 않더라. 그 후에 그 사체 피부를 떼어내고 내 머리의 피부를 떼서 거기에 이식했어.

흑인의 피부였던 건 어쩌다 그렇게 된 것 같아. 간호사가 밴드를 떼어낼 때 마취된 상태였는데 간호사가 “어? 흑인 피부네요? 좋죠? 좋네요!”라고 해서 나도 “좋네!”라고 했었어.

고추에도 혹시 화상을 입었어?

다행히도 아니야. 주로 겨드랑이부터 아래 갈빗대까지였어. 젖꼭지가 타서 없어지면서 왼쪽 몸통이 온통 난장판이었는데, 다 허리 위부터 목 아래 부위였어.

아깝네. 흑인 고추를 가질 수 있었을 텐데…

[웃음] 그러니까 말이야. 그건 떼어내지 않았을 거야.

photo courtesy of emerica

 

어렸을 때 홈스쿨을 했었다며. 학교 과정은 잘 마쳤어?

꽤 괜찮은 공립 학교를 다녔었어. 난 대학 진학반 코스를 하면서 대학을 바로 가려고 했었어. 성적도 좋았거든. 그러다 투어에 다닐 기회가 많아졌고, 너무 많이 결석해서 학교에서 잘렸어.

홈스쿨을 시작하니까, 내가 배우던 부분부터 딱 커리큘럼을 주더라. 그래서 대학 진학반 심화 수업을 공부했어. 조언해주는 분이, “보드를 이렇게 탈 기회가 있으면, GED를 따봐.”라고 하더라. 똑같은 거야.” 그런데 3년 동안 계속 스케이트 투어를 다녀서 결국 못 땄어[웃음]. 요새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그게 생각나는 것 같아. 학교 시절을 돌아보면, 조금 더 진지하게 다니면서 잘 끝마쳤을 걸 말이야. 그래도 그 나이에 투어를 다니는 것도 좋은 교육이었어. 학교에서 “대수학 2” 배우는 것보다 훨씬 더 배울 게 많았지.

“그래도 그 나이에 투어를 다니는 것도 좋은 교육이었어. 학교에서 “대수학 2″ 배우는 것보다 훨씬 더 배울 게 많았지.”

 

보통의 학교생활에서 못해봤다고 느끼는 게 있어?

없어. 배운 걸 다 잊어버리긴 했지만 배우긴 다 배운 것 같아[웃음]. 지금은 공부하는 게 막 재미있어졌고, 대학에 다닌다는 건 존나 큰 기회처럼 느껴져. 학교로 돌아가야 하나 싶기도 하고. 뭘 공부할지는 모르겠지만 종종 그런 걸 생각해. 정작 진짜 고등학교에 있을 때는, 어떻게 하면 이 시스템을 이길 수 있는지, 아니면 잘 적용해서 이 시스템을 뚫고 나가며 바쁘게 일해서 다음 단계로 나가는 걸 배우는 것 같았는데.

학교 중간에 그만두고 나와서 투어를 다니면서 배운 것 중에 제일 가치가 있는 게 뭐였어?

인간에 대한 내 관점을 넓혔어. 다른 문화들에 대한 감각을 배웠어. 지리학적으로 직접 배운 거지. 다양한 예술과 문화를 봤거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만난 다른 정치적 견해와 다른 문화적 규범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많은 걸 배웠어. 그리고 난 나를 예술에 눈을 뜨게 한 Ed Templeton 같은 사람이랑 여행을 했잖아. Ed는 그냥 어떤 책을 읽으라고 주기도 했어. 살면서 처음으로 뭔가 지적인 것을 중요하게 여겨보는 게 멋있고 매력 있었어. 거품에 둘러싸인 채 도시 외곽에서 사는 것보다 그런 게 더 좋았던 것 같아. 그런 건 세상에 대해 더 알아가고 싶도록 만들잖아.

어렸을 때부터 투어를 다닌 결과로, 다른 사람보다 일찍 동정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해?

아닐걸. 난 17, 18살이었거든. 투어를 다니지 않았다면 아마 더 늦었을 거야[웃음].

그럼 스케이트보드 덕에 처음 섹스를 했다고 말할 수 있는 거야?

당연하지. 그 이후로도 마찬가지고.


photo courtesy of emerica

 

경제적으로 독립한 건 몇 살 때였어?

가물가물한데 아마 17살 때였을 거야. 사람들은 아마 내가 더 어렸을 때라고 할 텐데, 내가 어려 보여서 그런 거야.

너의 첫 Emerica 신발 모델로 얼마를 벌었는지 기억나?

정확한 숫자는 기억이 안 나는데, 그때는 참 좋았던 시기지. 최근 10년이랑은 차원이 다른 액수였어. 특히 최근보다는[웃음]. 그때는 스케이트보드에서 지금이랑 다른 시기였지. 특히 스케이터가 운영하는 신발 브랜드 입장에서는.

처음 생긴 큰 돈으로 뭐 했어?

아무것도 안 했어[웃음]. 뉴욕에 놀러 가거나 저녁 식사를 자주 쐈어. 그때는 술집에서 돈을 많이 쓰면서, 항상 쓰레기 같은 차를 타고 다녔고, 똑같은 집에서 살거나 스케이트 하우스에서 살았어. 다 일시적인 거라는 걸 알면서 돈을 썼어. 황금기였지만 그게 오래가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어. 당시 난 가구도 없는 집에서 살면서 허구한 날 길에서 퍼지는 87년식 BMW를 몰고 다녔어. 딱히 검소하려고 한 게 아니라, 으리으리한 거나 물질적인 거에 크게 관심이 없었어.

왜 스케이터들이 항상 돈 관리를 잘 못하는 것 같아? 아니면, 최소한 그런 평을 듣는 이유가 뭘까?

아마 우리가 돈을 버는 방법 때문일 거야. 보통 어릴 때 벌기도 하고, 사랑하는 걸 하면서 받는 돈이잖아. 또 이 일이 좀 추상적이기도 해. 회사에서 승진하면서 돈을 버는 그런 직업이 아니잖아. 우린 아역배우처럼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뭘 해야 하는지 모르는 애들이었으니까. 커리어라는 게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걸 몰랐지. 우리 몸도 그렇고.

너희들은 예전에 Emerica 맨션이 있었잖아. Hollywood Hills 동네에서 사는 건 어땠어?

첫 번째 Emerica 집이 유일하게 정말 맨션이었어. 내가 팀에 들어갔을 때 막 끝나는 시점이었지. Herman이랑 난 가서 학교를 빼먹으면서 거기서 지냈어. This Is Skateboarding이 나오고 사라졌지. 모두가 영상을 위해서 같은 공간에 있기 위한 용도였던 것 같아. 당시에 그 친구들은 술과 마약을 끊어가는 단계였어. 많은 친구들한테 그때가 과도기적인 시기였을 거야. 우리 어린애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 줄도 몰랐어.

 

그 집 월세가 얼마짜리였는지 알아?

모르겠어. 좀 싸게 들어갔을 거야. 미친 부자 동네긴 했지만, 낡은 집이었거든. 그 커다란 기둥들이 막 넘어지기 직전이었던 게 기억나. 빈민가 느낌의 맨션이랄까. 완벽한 시나리오였지. 집주인은 수리비로 수백만 달러를 내야 할 것 같았는데, 그러지 않고 세를 준거니까. 그러니까 쿼터파이프랑 플랫 바를 뒤뜰에 두고 파티 하우스로 쓰기 딱 좋았지.

유명한 사람들도 봤어?

Danny DeVito가 바로 옆집이나 근처에 살았던 것 같아[웃음]. 그래도 나한텐 Heath Kirchart랑 Andrew Reynolds보다 유명한 사람은 없지.

Andrew Reynolds랑 몇 년 동안 같이 살고 같이 보드를 탄 사람으로서, 걔의 제일 눈에 띄는 특징이 뭐라고 생각해?

[웃음] 음… 그래, Andrew는 삶을 스스로 간단하게 만드는 재능이 있어. 아주 극단적인 성격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온화하고 예의가 바른 사람이야. 아주 충동적이고, 삶을 단순하게 만드는 그의 방법이, 그를 열정이 이끄는 매력적인 사람으로 만든다고 할까. [웃음] 나도 모르겠어… 그리고 그리고 저 깊이에는 씨발 아주 보드에 미친놈이고. 걘 덕후이자 아재 개그를 하는 범생이야. 나랑 똑같아.

“Andrew한테는 자기가 “제프 골드블룸 현상”이라고 부르는 게 있거든. 시선이 어떤 사람한테 쏠리는 현상이야.”

 

Baker에 새로운 사람을 영입하는 건 어떻게 해? Andrew만 하는 거야? 네가 도움을 주기도 해?

나도 좀 더 관여하길 바라는 부분이야. Andrew가 그쪽에서 정말 좆 되는 재능이 있어. Andrew한테는 자기가 “제프 골드블룸 현상”이라고 부르는 게 있거든. 시선이 어떤 사람한테 쏠리는 현상이야. 제프 골드블룸이 영화에 나오면 씨발 무슨 이유에서인지 걔한테 시선이 간다고. 요새 다른 어린애들보다, Tampa AM에서 타는 친구들을 보고 싶더라. 비록 걔네가 제일 미친 트릭을 하는 건 아니지만 시선이 쏠리잖아. Andrew가 잘 찾아내는 것도 그런 것 같아.

 


photo courtesy of emerica

 

요새는 파티하는 걸 끊었지?

응, 큰 변화야. 파티라는 게, 놀면서 신경 팔려서 몇 주씩 날려버리기가 쉬워. 그러다 보드를 타면 기분이 좆같아. 지금은 술도 안 마시지만 여전히 쉽게 한눈 팔리거든. 내 주의력은 하나에 올인하는 게 아니면 사방에 흩어져버려. 만약 내가 그걸 동력으로 삼아서 어떤 프로젝트를 하거나 스케이트보드의 우선순위를 높인다면, 훨씬 좋을 거야.

Baker의 스케이터들이 극단적인 성격의 좋은 예야. 보드 타는 것도 그렇지. 그리고 그런 중독적인 행동은 길이 극명하게 갈리지. 그 친구들은 정말 “올인하는 게 아니면 아예 안 하는” 성격이야.  그 에너지로 그냥 딴짓을 하거나 아니면 생산적으로 바꿔야 해.

마약과 술을 끊는데 도와준 친구들 있어?

내가 정말 바라던 거였고, 그럴 필요가 있다는 것도 마음 깊이 알고 있었어. Jerry, Neckface, Tino Razo가 나를 앉혀놓고, “야, 네가 다시 보드를 타는 걸 보고 싶어. 다 끊고 다시 제대로 살아봐고.”라고 말해줬어. 큰 힘이 된 말이었어. 제일 친한 친구이자 같이 술 마시는 친구들이야. 그게 경종이 돼줬어. 배신같이 느껴지지 않았고, 내가 밀어붙일 필요가 있는 거라고 느꼈어.

어떤 특별한 사건이 있어서 그랬던 게 아니야. 그 친구들이 내 안의 잠재력을 믿어줬고, 내가 당시에 보드를 그만두고 직장을 찾으려고 한다는 걸 걔들은 알고 있었거든. Andrew, Erik, Shane 같이 내가 우러러보는 좋은 본보기들이 많잖아. 다 끊고 삶을 더 낫게 바꾼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랑 이야기도 많이 하면서 용기를 얻었어.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들” 모임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도 많다는 걸 알고 응원도 하고 정말 중독을 성공적으로 끊은 걸 봤지만, 난 안 맞더라.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들” 모임에 참여하지 않은 거야? 그럼 순전히 자기 의지로만 끊은 거야?

순전히 의지로만 끊었다고 하면 거짓말일 거야. 명상이 도움이 돼서 결국 치료소에 갔었어. 내가 기억하는 한 오랫동안 하고 싶어 하던 거였어. 거기서 핵심 문제에 접근하는 데에 도움을 받았어. 내 불안과 도망치고 싶은 것들에 대해서 말이야. 치료소는 너무 낙인찍혀 있는 것 같아. 난 그걸 지지해. 돈을 지불할 수만 있으면, 내 신경증과 불안과 걱정 때문에 친구와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수 있는데 말이야.


photo: mehring

 

명상은 어떻게 하게 된 거야?

힘들었던 이혼 과정을 거치고, 항상 보드를 타진 못하고 활동적일 수도 없을 당시 불안 증세와 씨름하면서 접하게 됐어. 특히 술, 마약을 끊으면, 감정들이랑 불안만 남아. 그런 게 밖으로 나오거든. 명상 오디오 가이드를 통해서 초보자 단계부터 시작했어. 정말 기본 같은 건데 난 잘 못해. 그래도 뭔가 도움이 될 때 보람이 느껴지더라.

명상이란 말이 뭔가 의식 있어 보이고 히피 같아 보여서[웃음],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단어 같아. 나랑 안 어울리는… 누가 명상한다고 하면 되게 내 머릿속에선 되게 이상하게 그려져. 그런데 스케이트보드와 예술처럼 내가 정말 즐기는 것들에서, 난 마음을 깨끗하게 만드는 걸 찾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어. 그 순간순간에 집중하면서 말이야.

“특히 술, 마약을 끊으면, 감정들이랑 불안만 남아. 그런 게 밖으로 나오거든.”

 

명상을 얼마 동안 해?? 그리고 어떻게 해?

음, 그렇게 길게 하진 않아. 이상적으로 5분에서 30분 정도야. 조용한 곳으로 가서 숨을 쉬는 것에 집중을 하고, 생각들을 꺼내보되 그 생각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그것들이 그냥 지나가도록 하는 거야. 결국 그 레이스를 멈추고 숨을 쉬는 것에 집중할 수 있어. 만트라(mantra)를 가지고 있는 게 가끔 도움이 되기도 해. 보드 탈 때도 마찬가지야. 마음이 혼란스러운 채 트릭을 하려고 하면, 마음을 비우려고 하잖아.

Headspace 같은 앱도 있어. iTunes 앱 스토어에 좋은 명상 가이드 앱이 많아. 폰을 쓰는 게 좀 안 어울리는 것 같아 보일 수 있지만, 나 스스로에 다가가고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을 밟을 수 있다면 뭐든 괜찮을 거야. 난 평생을 불안 증세로 고통받은 사람인데, 그게 이런 시도를 해볼 수 있도록 도와줬어.


photo: mehring

 

남아프리카에서 누가 너한테 총을 겨눴다면서? 어떻게 된 거야?

미쳤었어! Durban에 있었는데 거기엔 마당 수영장이 몇 군데에 있거든. Grant Taylor가 그곳들에서 타는 걸 봤었어. 그래서 거기 가는 게 엄청 신났었거든. 사람들이 그 집주인이 절대 거기에 없을 거고, 보드 타도된다고 다 허락받았다고 했었거든.

거기 옆집에 또 풀장이 있었는데, 심지어 누가 DIY로 근처에 지어놓기도 했었어. 딱 보면 엄청 보드를 타놓은 상태여서, 우리도 편안하게 있었어. 난 사진을 찍고 있었고 세션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전부가 “워, 워, 워!” 소리 지르는 거야. 애들 전체가 다 패닉을 한 소리였어. 내가 올려다보니까 위쪽에서 어떤 사람이 나한테 총을 겨누고 있더라. 아, 이렇게 내 삶이 끝나는구나… 했지. 평생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어.

알고 보니까 그 사람은 집주인의 아들이었고 우리를 겁주기 위해서 그렇게 했던 거래. 결국엔 우리가 보드를 타도록 허락해줬어. 그 사람은 계속 거기 서있었는데, 총은 어디로 치우고 “트릭 좀 보여줘.”라고 하더라[웃음]. 난 계속 다리가 엄청 후들거렸어. 그런데 그렇게 빡센 친구는 아닌 것 같더라고.

어떤 총이었어? AK-47?

아니, 권총이었어. 그리고 진짜 총이 아니었어. 진짜 총처럼 보이도록 개조한 공기총이었어[웃음].

[웃음]아, 그걸 들으니까 걔가 너한테 장난친 거 같긴 하네.

[웃음] 맞아, 그래도 난 몰랐었어. 걔 말고 몇 명 더 있었는데 총을 치운 뒤에도 우리를 혼내주겠다고 지랄하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뭐 맞아. 가짜 총이었어.


출처: http://www.jenkemmag.com/home/2017/01/17/the-second-coming-of-kevin-spanky-long/
<THE SECOND COMING OF KEVIN “SPANKY” LONG>, 2017.1.17.
Intro & Interview: Alexis Castro
Photography: Jonathan Mehring & E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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