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trick O’dell과의 인터뷰: Epicly Later’d, Big Brother, 투자 계획에 대해

만약 네가 Ali Boulala의 Epicly Later’d 에피소드를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면, 넌 감정이 없는 로봇이거나 매사에 냉담한 놈일 거야. 스케이터의 이야기가 단순한 스케이팅보다 훨씬 더 클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감동적인 다큐였잖아.

Epicly Later’d의 뒤에 있는 위인이 바로 Patrick O’dell이야. 스케이트보드 바닥에서 엄연히 최고의 다큐멘터리 작가면서도 겸손한 친구지. 대상으로부터 생생한 걸 끄집어내고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데에 탁월한 능력이 있어. 그런 그가 스케이트보드 최고의 잡지였던 Big Brother에 대한 다큐를 만들어냈으니, 어찌 신나지 않을 수가 있겠어.

얼마 전 나온 그 다큐 Dumb을 Hulu에서 보니, 지금이 Patrick O’dell을 만나보기 좋은 시간이라고 생각했어. Big Brother 매거진에 대한 다큐와 그 멋진 Epicly Later’d 시리즈를 어떻게 하게 됐는지, 그리고 돈 투자 방법, 그리고 스케이트보드에서 앞으로도 계속 버텨내는 것에 대해서도 물어봤지.


방금 구글에서 네 이름을 쳐보니까, <Patrick O’dell은 게이인가?> 팬아트 콘테스트가 나오던데?

아, 그래? [웃음] 기억도 안 나네…

예전에 사람들이 널 게이라고 생각했었어?

모르겠어, 음. 아마도? 구글에 내 이름을 자주 쳐보진 않는데, 아마 Tomas Morton이 그거 만들었을 거야. 나랑 전에 Vice에서 같이 일했었고, 지금은 TV 쇼 관련 일을 하는 친구야. 내 근처에 앉았었는데, 그런 거 하는 걸 좋아했거든.

Big Brother 같은 질문을 해보자면… 너 게이야?

아니, 난 결혼했어. 아, 그게 꼭 스트레이트라는 증거는 아니지. 음, 몰라. [웃음]

Giovanni Reda가 너보다 선수쳐서 Vice의 Brian Anderson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서 화났었어?

우리가 Brian Anderson의 Epicly Later’d 에피소드를 하려고 할 땐, 아직 카메라 밖에서만 논의된 단계였고 Brian은 아직 찍을 준비가 안됐다고 했었어. 내가 말해놓긴 했지. 그가 원하면 바로 시작한다고. 그런데 내가 그 뒤 1년 동안 한 번도 재촉하지 않았긴 했어. [웃음] 그리고 내가 Big Brother 다큐를 만들기 시작했고, Giovanni Reda가 그 Brian Anderson 다큐를 만들어 버렸어. 물론 스케이트보드에는 온갖 다양한 이야기가 있고, 그걸 내가 소유한 것도 아닐뿐더러, 누구나 이야기를 하고 다큐를 만들고 하고 싶은 걸 할 만큼 충분한 공간이 있지.

 

네가 봤을 땐, 2017년이 돼서야 스케이트보드에 동성애에 대한 다큐가 나왔다는 게 웃기거나 놀랍다거나 그래?

응, 좀 웃기지. 그 Reda가 만든 다큐에 반대하는 게 아니야. 스케이트보드는 더 동성애를 인정하기 위해 노력해야 해. 그 부분에서는 일반 대중문화에 비해서도 뒤처져 있는 게 현실이야.

스케이트보드가 지금까지 얼마나 보수적이었는지 계속 놀라. 참 이상해, 펑크에서 태어났는데 말이야. 그런데 내 경험상, 보드를 안타는 내 친구들이 스케이터들보다 더 마음이 열려있고 그런 걸 개의치 않아. 특히 90년대에는 조금 다른 걸 좋아하거나 스케이트보드 유니폼같이 정해진 스타일의 옷을 입지 않으면, 많은 반감을 샀던 것 같아. 주류의 스케이트보드 인물이 되기 위해서, 내가 좋아하는 걸 바꿔야 했다거나, 다른 음악을 좋아하는 척을 했어야만 했어.

내가 샌프란시스코에 살았을 때, San Francisco Art Institute에 다녀서 게이 친구들이 많았거든. 당시 샌프란시스코에서 스케이터의 세계는 예술 커뮤니티나 다른 어떤 세계보다 더 보수적이었어.

Anti-Hero에서 모든 아트워크를 했던 Chris Johanson을 만났을 때, 난 18살이었거든. 예술가로서도 그를 우러러봤지만, 스케이터로서도 마찬가지였어. 막 “와- 저 사람 진짜 멋있다. Julien Stranger랑 다니네.” 이랬단 말이야. Chirs Johanson의 밴드가 우리 학교에서 공연을 했었는데, 그 밴드에 트랜스젠더가 있었거든. 난 속으로, “와 멋있다. 저 사람은 저렇게 개방적인 예술도 좋아하는 동시에, Julien Stranger 같은 스케이터랑 다녀도 괜찮은가 보네.”라고 생각했어. Chirs는 그 두 세계에 다리를 놓을 수 있는 사람이었어.

얼마 전에 Big Brother 매거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잖아. 어렸을 때 팬이었어?

아니, 사랑했어. 난 항상 뭔가를 읽는 걸 좋아했고, Big Brother가 막 창간했을 때 15, 16살 정도였어. 난 ThrasherTransworld를 읽으면서 컸어. Transworld에는 정말 멋있는 사진이 많았고, Thrasher에는 멋있는 사람들이 많이 나왔지. 그런데 Big Brother는 스케이트보드 글을 읽고 처음으로 소설 같다고 느낀 잡지였어.

어렸을 때는 톰 소여의 모험이나 길 위에서 같은 모험 소설을 읽잖아. Big Brother의 투어 부분을 읽으면 그런 모험을 느낄 수 있었어. 스케이트보드의 모험에 대해서 처음으로 사랑에 빠진 거였지.

그전까지의 내게 스케이트보드는 그냥 우리 동네에서 하는 거였거든. 그걸 읽은 뒤로는 “나도 나가서 스케이트보드 모험을 떠나고 싶어!”라고 느꼈어. 단순히 도심지 속으로가 아니라 횡단 여행을 하면서 말이야.

그리고 걔네가 스케이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 말이야. 스케이트보드 외의 다른 이야기까지 다큐처럼 다뤘거든. 내가 알기로 다른 잡지에서는 그렇게 한 적이 없었을 거야. 그런 글이 나한테 분명 영향을 끼쳤고, 나를 Epicly Later’d까지 끌고 온 거지. 나도 그런 이야기를 풀어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말이야.

그 다큐멘터리를 왜 Hulu에서 오픈한 거야? 걔네가 너한테 제안한 거야, 아니면 네가 먼저 제안한 거야?

걔네가 제안했어. 걔넨 뭔가를 하고 싶어 했거든. 걔네는 Jeff Tremaine한테 물어봤었는데 Jeff는 “난 대상이지, 감독이 아니야.”라고 답했어. 제삼자가 했어야 했는데, Jeff가 그 일을 하라고 날 데리고 왔지.

Hulu 같은 주류 플랫폼 입장에선 Big Brother를 보던 독자들이 너무 적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어?

Jackass가 Hulu에서 나왔잖아. Jackass 팬이랑 스케이터랑 다 따지면 꽤 큰 수가 돼. 가끔 [Epicly Later’d]의 어떤 에피소드는 말도 안 되게 많은 조회수를 기록해서, “이게 다 누가 보는 거지?”하고 궁금할 때도 있어. 보드를 타지 않거나 타보지도 않은 사람들, 그리고 조금 흥미만 있는 사람들한테서도 피드백을 받아왔어.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속으로 “이 사람도 [Epicly Later’d]를 봤으면 진짜 묘하겠다.”라고 생각했어. 왜냐하면 그 아저씨는 보드도 안 타고 어떤 배경도 없거든. 카고 반바지를 입은 50살의 독일 아저씨였는데, 나한테 “오, 당신 쇼 봤어요.”라고 하더라. 그런데 나도 똑같아. 내가 관심도 없는 스포츠의 선수들에 대한 “30 for 30” 에피소드를 보거든.

실리지 못한 내용 중에 우리한테 이야기해줄 거 아무거나 뭐 없어?

한물간 스케이터에 대한 Big Brother 기사를 다룬 부분이 있었어. 사람들이 그 기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기 이름이 그 기사에 실려서 얼마나 화났었는지 말하는 거였지.

걔네가 그 리스트에 Tony Hawk를 넣었거든. 그러니까 농담이었던 거지. 그런데 Tony는 화났고, Mike Vallely도 화났는데, 내 생각에 당시 작가들은 그냥 앉아서 웃으면서 별생각 없이 “이 사람도 리스트에 넣자,”했던 거야.

Earl Parker[Big Brother 작가]가 나한테 그러더라. “너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 잡지를 볼 줄 몰랐어. 스케이트보드의 팬들이나 이 땅 어딘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잡지라고. 이 산업에 있는 그 사람들이 볼 줄 몰랐어.”라고. 걘 사람들한테 맞기도 하고 미움받았어. 사람들은 그 친구가 쓴 글 때문에 걔한테 화내기도 했어. 그 친구는 머릿속에서 “이건 너 읽으라고 있는 게 아니야. 넌 애초에 왜 읽는 거야, 이건 스케이트보드 팬들을 위한 거라고…”라고 생각한 거지.

그 다큐멘터리에서 Steve Rocco[Big Brother의 창간자]를 인터뷰한 건 어땠어?

걘 따지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재미있었어. 걘 인터뷰를 하면, 항상 질문이 바보 같다고 하거나 잘못된 사실이라고 말하는 그런 사람이야. 우리가 어떤 질문을 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게 잘못됐다는 거야. 벌써 몇 달째 그 다큐를 만들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제대로 알고 있는 게 확실했거든. 그런데 난 그런 스타일이 좋아. 잡지에서도 걘 도발적인 사람이었어. 그리고 걔가 만들었던 보드 그래픽 같은 것도 그랬지. 앉아서 인터뷰할 때도 그래. 거의 조금은 빡치게 되거든.

걔네 집은 어때? 큰 저택이야?

아니, Malibu에 있는 비싼 집이었는데, 저택까지는 아니었어. 서프 하우스 같았어. 서프보드가 많았고, 서핑에 빠져있더라. Malibu에서 산다는 건 정말 대단한 가치가 있는 거더라. 해변가까지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집이었어. 걔네 집이랑 걔를 보고 걔가 스케이트보드 역사상 가장 거대한 인물이었다는 걸 상상하기 어려울 거야.

내 생각에, 걘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행복하게 떠난 거야. 자기 브랜드를 팔았을 때 사람들은 “와, 엄청 부자 됐겠다.”라고 말했잖아. 자기 회사였던 World Industries를 얼마에 팔았는지는 모르지만, 충분히 부자가 될 정도였을 거야. 옛날에 멋진 일을 많이 하고도 지금은 돈이 한 푼도 없는 사람들도 있잖아. 내가 알기론, 걘 부동산 투자도 하고, 보드랑은 관계없는 사업에 투자를 해서 계속 잘 된 걸로 알고 있어.

너도 투자해? 돈을 보통 어디에 써?

최근에는 예술 작품을 많이 샀서, 이젠 좀 줄여야 돼. 돈이 얼마가 생기든, 새로 찾은 작품을 사는데 계속 썼거든. 싸게 살 수만 있다면, 아마 사진이나 그림 같은 걸 살 거야. 그런데 나머지 돈은 전부 Vanguard 투자 계좌에 넣어.

프로 스케이터들한테도 이야기해주고 싶어. 걔네도 Traditional IRA를 해야 한다고 말이야. IRA는 독립적인 계약자 버전의 401K야. 55살까지 떼어가고, 그다음에는 인출할 수가 있어. 그러니까 뮤추얼 펀드에 투자하는 저축 계좌 같다고 할 수 있어. 은퇴했을 때를 대비해서 저축한다고 할 수 있지. 그전에는 그 돈을 건들 수가 없거든.

그게 Heath Kirchart가 은퇴할 수 있었던 이유야. 걘 뮤추얼 펀드에 투자했었거든. 모든 돈을 전부 말이야. 걔가 은퇴했을 때, 몇 백만달러 정도 모았었어. 옷이나 차, 비싼 걸 사지도 않잖아. 자기가 받았던 돈을 다 저축했던 거야. 뮤추얼 펀드는 덜 위험한 투자 대상을 고를 수가 있거든. 주식처럼 도박판이 아니야. 안전하게 할 수 있어. 이 글을 안 읽을 수도 있지만, 모든 프로들한테 뮤추얼 펀드나 IRA를 하라고 말해주고 싶어.

지금까지 네가 이야기해본 모든 프로 스케이터들 중에, 저축 계획을 가지고 있던 사람의 비율이 몇이나 될 것 같아?

모르겠어. 아무도 저축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아. 대부분이 바로바로 쓰지. Heath Kirchart는 저축에 온통 관심이 많았어. 저축하고 투자하고. Spanky도 마찬가지야. 걔도 저축하는 사람이야. 그게 바로 걔가 얼마 동안 다 떼려치고도 돈 문제가 생기지 않았던 거지. 걘 평생을 저축해왔거든.

 

왜 스케이터들은 Morrissey를 그렇게 좋아할까?

모르겠어. Morrissey가 아웃사이더니까, 추방된 사람들한테 더욱 와닿는 거 아닐까. 그게 동시에 요새 어린 스케이터들이 Morrissey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야. 어린 스케이터들은 이제 더 이상 아웃사이더들이 아니거든. 모든 스케이터가 다 그를 좋아하는 것 같진 않아. 꽤 많은 사람들이 걔를 싫어하기도 해. 그래도 스케이트보드쪽에서 Morrissey를 숭배하긴 하지.

네가 어렸을 때 괴롭힘당했었고 아직도 그런다고 말했던데, 어떤 면에서 괴롭힘당하는 거야?

모르겠어, 조금 달라서 그랬나. 난 가끔 뭔가에 대해서 엄청 신나하거든. 사람들은 그게 거슬리나 봐. 난 완전 들뜬 상태가 되. 어렸을 땐 표적이 됐었어. 다른 곳으로 전학을 가도 또 똑같이 시작됐지… 다른 사람들과 다르면, 사람들은 그 다른 점을 없애버리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대학에 가서는 그런 게 없었어. 다른 사람들도 색다르고, 그런 점을 탐험할 수 있잖아. 사람들이 괴롭히는 나의 어떤 특징이, 정말 그렇게 이상한 건지 이해하기가 어려워. 난 진짜 어색한 사람이고 되게 멋도 없어.

스케이트보드에서 오랫동안 일했는데, 지쳐버린 적 없어?

Thrasher에서 있을 때 막바지에 그랬어. 왜냐하면 정말 긴 여행들을 다녀야 했거든. 별로 신나지 않는 여행.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던 스케이터나 팀이랑 다녀야 했던 여행이 있었어. 그러다 “Thrasher에서 이렇게 아무 여행이나 계속 다녀야 하는 게 내가 갈 길이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어. 내가 스케이트보드 자체에 질린 건 아니야. 11개 계단 밑에서 어안 렌즈랑 조명을 들고 얘가 팝 샤빗으로 이걸 랜딩하길 바라며 죽치고 있는 게 싫었어. 그게 질려버린 것이라거나 다른 곳에서 스토리텔링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지금까지 Epicly Later’d에서 네가 참여하는 과정이 어떤 거야?

처음 한두 편 에피소드에서 우리는 카메라맨이 있었어. 처음에는 Bill Strobeck이었지. 내가 진행을 맡기로 했었어. 내가 일단 진행해버리지 않았다면, 이 쇼는 아예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 같아. 이걸 촬영하는 날짜를 잡고 촬영팀을 꾸리는 게 Vice 입장에서는 우선순위가 높지 않았거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냥 내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나가서 찍었어. 만약 내가 촬영 스케줄과 카메라맨을 위한 예산을 기다렸다면, 절대 만들어지지 않았을 거야. 그래서 내가 나가서 엄청 많이 찍어온 다음 보낸 셈이야. “이걸 좀 멋있게 만들어줘.”라고 하면서. 그런데 크루가 같이 하는 게 더 좋아. 결과물이 훨씬 잘 나오더라고.

 

네가 편집에도 관여해?

난 편집은 전혀 하지 않아. Lauren Cynamon이라는 여자분이 있어. 우리 편집자야. Epicly Later’d의 모습을 만든 사람이야. 보통 편집자들이 75%나 그 이상 만들어 놓으면, 내가 보기 시작하고 “이거 자르고, 이렇게 편집하자”는 식으로 관여해. 보통은 편집자를 믿어. 특히 지금은 쇼의 모습이 확립돼서, 에디터들을 믿고 마무리할 수 있어.

에피소드 촬영을 하면 돈을 받는 거야?

응. 프로젝트가 완성돼서 나오면 돈을 받아. 필르머로서 촬영 날짜에 따라 돈을 받지는 않아. 프로듀서로서 받는 셈이지. 가끔은 완성을 하기 위해서 촬영 때 무리하기도 해. 제정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걸 커리어가 아닌 취미로 봐야 되겠다고 생각했던 시점도 있었어. 난 이걸 내 소명이나 내 결과물 전체, 혹은 개인적인 프로젝트로 여겼었거든. 때론 작업 자체가 보상이기도 한데 말이야.

쇼 초반에는 예산이 얼마나 들었어?

기억이 안 나. 대부분의 예산은 편집에 들었어. 내가 썼던 돈은 대충 1,000달러 정도 언저리였던 것 같아. 난 항상 이거 말고 다른 일이 병행해왔거든. 오직 Epicly Later’d만 하고 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 뭐 잠깐 다른 프로젝트들이 비었을 땐 그것만 하고 있을 때도 있었는데, “이것만 해서 돈을 벌어야지.”라고 생각했던 적은 없었어. 그러면 종종 짜증 나잖아. 다른 걸 하는 동안에 이것저것 하면서 자유를 만끽하지.

어떤 사람을 위한 Epicly Later’d 에피소드를 만들 기 전에 네가 하는 것이 있어?

이제 일찍 감을 잡고 윤곽을 만드는 걸 조금 잘하게 됐어. 그리고 스케이터랑 이야기하면서 100% 확실히 이걸 할 것인지를 이야기하는 것도 잘하게 됐지. 예전에 나한테 자기도 Epicly Later’d 에피소드를 하고 싶다고 해서, “너 그럼 네가 거지였을 때랑 헤로인 중독이었던 때도 다 이야기할 수 있어?”라고 물어보면 싫다고 한 스케이터들도 있었거든. 그럼 내가 “음, 내가 대충 아우트라인을 그려놨는데, 네가 그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면…그럼 당시에 왜 스케이트보드를 떠났었는지 어떻게 설명을 해야 돼? 큰 구멍이 뚫린 배가 되잖아.”라고 해. 그렇게 내가 안 하겠다고 한 적이 두어 번 있었어. 그런 사람에 대한 에피소드는 안 만든다는 거지. 아니면 내가 거짓말로 채워 넣어야 하나? 그건 아니잖아.

 

영상 인터뷰나 인물 사진을 찍을 때, 상대가 마음을 열도록 하는 기술 같은 게 있어?

눈을 마주치는 게 중요하다고 느껴.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상대와 소통해야 해. Epicly Later’d나 사진을 찍을 때, 스케이터가 불편해하는 것 같으면, 그들에게 피해가 되는 건 나도 원치 않는다는 걸 알려주는 방법을 찾아야 해. 그리고 스토리텔링을 하고 싶다는 것도 함께. 그 두 가지가 함께 되면 좋겠지. 그래서 사람들이 얼마나 편안한지 탐색하려고 계속 노력해. 인물 사진을 찍을 때도 마찬가지야.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그리고 그걸 대상이 어떻게 같이 동참하게 할 수 있는가 생각해야 해.

Epicly Later’d를 TV에서 할지, 온라인에서 할지 어떻게 접근해?

음, 그건 우리가 누구에 대한 에피소드를 하는지에 따라 달라. TV에서 볼 때 어떤 게 좋은지, 단순히 스케이트보드 이야기가 아니라 더 매력적인 게 뭔지 고려해야 돼. 온라인에서 할 때는, 스케이트보드 역사의 작은 부분들이랑 누가 왜 팀에서 쫓겨났는지 세세한 이유 같은 걸 더 다룰 수 있어.

TV에서 할 때는 새로운 이야기를 하려고 해. 예를 들어, Heath Kirchart를 다룰 때는 그의 이야기 중 내가 하지 못했던 이야기에 더 관심이 있었어. “왜 Birdhouse에서 나와서 Alien Workshop을 간 거야?”라는 질문보다, “왜 미국을 오토바이로 횡단한 거야?”라는 질문이 더 흥미로울 거야. 그게 우리가 항상 해왔던 방법이야. 그런데 우리가 스케이트보드 가십을 다루는 데 더 집중했던 때도 있었지.

맞아, 동의해.

실험을 하고 새로운 일을 하는 건 항상 가치가 있어. 난 Big Brother 다큐 때문에 긴장되고, 에피소드들이 TV에서 방영되는 게 긴장돼. 사람들이 안 좋아할 위험부담도 있지만, 일단 해보기 전까진 모르는 거잖아. 난 항상 스케이트보드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정신을 분석하는 길로 이용해왔어. 회사를 그만두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해왔다고. 진짜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고.

 


출처: http://www.jenkemmag.com/home/2017/06/12/epicly-laterd-big-brother-investment-plans-pat-odell/
<EPICLY LATER’D, BIG BROTHER & INVESTMENT PLANS WITH PATRICK O’DELL>, 2017.6.12.
Interview: Ian Michna
Photos: Jeff Fribou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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