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ce Mountain이 알려주는 프로 스케이터 직업의 변천사

photo: arto saari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걸로 돈을 벌기 시작한 게 벌써 반세기가 넘었다는 걸 믿을 수 있어? 음, 엄밀히 말하자면, 완전 사실은 아니야. 프로 스케이터가 된다는 건 단순히 보드를 타기만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해야 하거든. 그 직업을 필요로 하는 기업과 사회와 함께, 프로 스케이터의 할 일도 계속도 진화해왔어. 이를 직접 경험한 사람의 시각을 접하기 위해서, 오랜 경력의 스케이트보드 자서전 작가인 Sean Mortimer한테 부탁했어. OG 스케이터인 Lance Mountain에게 물어봐 달라고 말이야. 이 작은 장난감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Lance Mountain은 시작부터 있었었잖아. 이 바닥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받아 적을 준비를 하고 들어보자고.

초기

1960년대 스케이트보드의 태동기에는 유명한 서퍼들만 자기 이름이 쓰인 보드를 가지고 있었어. Duke Kahanamoku가 우리가 “프로 모델”이라고 부르는 보드를 가지고 있었지. Duke는 레전드 서퍼였고 유명했거든. 그래서 스케이트보드에 그의 이름을 썼지. 서핑에서 시작된 모든 스케이트보드 회사들이 자기네 보드에 서핑계에서 유명한 사람의 이름을 쓰기 시작했어.

그런데 Tom ‘Wally’ Inouye가 스케이트보드 잡지가 어떻게 뜨기 시작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줬어. 1977년 그는 Concrete Wave 스케이트파크에서 보드를 타고 있었대. 자기 시그니처 모델이 있어서 명확히 프로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을 때야. 이때는 보드에 쓰인 이름이라고는 Tom Sims 정도뿐인 때였어.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자기 이름을 데크에 넣기 시작했거든. 아무튼 Wally가 Concrete Wave 스케이트파크에서 타고 있었고, 한 사진가가 Sims Skateboards 팀의 잡지 촬영을 위해 다른 친구를 찍고 있었대. 그런데 어떤 꼬마 애(Wally)가 파크를 조지고 있다는 걸 발견하고, 스케이트 촬영을 위해 Sims 저지를  입어달라고 꼬마에게 부탁했대. 그래서 SkateBoarder에 실린 그 사진이 나온 거야. 얼마 지나지 않아서 걔는 1년 동안 잡지에 가장 많이 나온 스케이터가 됐대. 바로 거기서 프로 스케이터의 직업이 된 거야. 우리 옷을 입고 잡지에 나와라. 그러면 돈을 주겠다. Wally는 Sims Skateboards에 들어갔고, 그 사진으로 돈을 받았어. 자기는 어쩌다 보니 그 사진으로 프로가 된 거라고 하더라. 그 사진이 잡지에 나가면서 사진 인세를 받기 시작했대.

당시에도 Stacy Peralta, Russ Howell, Jay Adams, Henry Hester 같이 자기 시그니처 데크가 있는 프로가 있었는데, 아주 드물었어. 자기 데크가 있는 프로들보다 Wally가 더 많이 매체에 나왔기 때문에, 사람들은 곧 Tom ‘Wally’ Inouye의 데크도 나오겠다고 생각했지. Sims Skateboards에서 Wally의 프로 모델을 몇 개 만들긴 했는데, 다른 회사인 Caster에서 Wally에게 프로 모델을 만들어주겠다고 제안을 했고, 그는 그걸 받아들였어. 그래서 Wally는 Caster 소속이 됐고, 잘 나가는 프로 스케이터로서 그의 역할은 단순히 사진에 찍혀서 매체에 노출되는 것뿐 아니라, 자기 시크니처 데크의 디자인 작업을 직접 도와주는 것까지 확장된 거야.

스케이터는 자기 데크가 어떤 게 좋겠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잖아. 그래서 회사 사장과 함께 데크의 모양과 디자인 작업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합판을 더 얇게 만든다거나 테일의 킥이 세워진 각도 같은 걸 조절하기 시작했어. 당시에는 아직 기본적인 수준이었고, 돈을 많이 벌진 못했어. 하지만 내 생각에 Caster는 그에게 월세를 내주고 있었을 거야. 당시 대부분의 회사 사장들은 나이가 든 서퍼들이었고, 그들은 어린 서퍼들과 엮이고 싶어 했거든. 그래서 Wally 같이 어린 친구를 데리고 와서, 제품 디자인에 참여시키고, 매체에 노출시키고, 또 다른 어린 친구들을 영입하도록 했던 거야. 프로 스케이터는 운동선수이자, 디자이너이자, 재능 있는 스케이터를 발굴하는 스카우터이자, 팀 매니저까지의 역할을 하게 된 거야.

 

1980년대

80년대 초반의 프로 스케이터의 직업은 단순하게 대회에서 우승하는 거였어. 좋은 프로 스케이터는 대회뿐 아니라 훨씬 더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말이야.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건 계약서에 적혀있지는 않은 암묵적인 룰이었고, 그걸 알고 있던 스케이터들은 성공적이었지. 대회에 참가하지 않던 훌륭한 프로들도 많았는데, 그들은 사라져버렸어. 회사들은 대회에서 우승하라고 프로들에게 돈을 줬던 거야. 잡지에서 노출된다는 측면에서도 이게 더 강화됐어. 왜냐하면 잡지에 실리는 내용이란, 대회에서 누가 새로운 트릭을 하고 몇 등을 하는지가 대부분이었거든. 대회에 참가하지 않으면서 스케이트보드계에서 이름을 알리는 건 거의 드문 일이었어.

난 몇 개의 아마추어 대회에서 우승을 했었기 때문에, Variflex에서 날 영입했어. 그런데 내가 프로가 된 1981년에는 스케이트보드가 그렇게 인기가 많지 않았어. 보드 판매 인세로 한 달에 15달러 정도를 벌 뿐이었지. Tony Hawk는 한 달에 고작 80센트 번 적도 있었어. 프로들은 이때 보드 판매 인세랑 대회 상금, 그리고 가끔 데모를 통해서만 돈을 벌었어. 대회에서 우승을 하면 300달러 정도, 데모를 하면 50달러를 벌었지. 80년대 초기에는 스케이트보딩은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프로들은 돈을 벌기 위해 뭐든지 했어. 난 너츠베리팜(식품제조업체)에서 하루에 50달러 받으면서 포터블 램프에서 데모를 했었어. 새로 출시된 유구르트를 광고하기 위해서 랄프의 마켓 앞 주차장에서 데모를 하기도 했고. 프로들은 자기 트럭이나 휠, 신발 스폰서로부터 돈을 받지 않았었거든.

모두가 감을 잡아가고 있었어. 8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데모가 스케이트보드를 퍼뜨리는데 기반이 됐었고, Powell Peralta와의 계약서에는 드디어 1년에 36번 데모를 할 거라는 걸 명시할 수 있었지. 이런 적도 있었어. 콜로라도까지 차로 가서, 점프 램프를 설치해서 타고, 길가에서 핸드플랜트를 하고, 다시 짐을 쌌어. 그때 눈이 오고 있었거든. 그런데 가게 사장이 돈을 안 주려고 하는 거야. 추워서 애들이 가게로 들어가 버렸고, 가게에서 뭘 훔쳤나 봐. 가게 사장은 데모가 마음에 안 드는데 대체 왜 돈을 줘야겠냐고 하더라. 데모에서 어떤 기물을 타게 될지도 전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이든 탈 수가 있었어야 했어. 기온이 39도인 애리조나 Yuma 시의 어떤 가게로 가기도 했어. 새로 깐 아스팔트가 녹는 날씨였는데, 우리가 램프에서 점프를 해서 랜딩하면 멈춰버렸지. 휠이 아스팔트 속으로 4센티 정도 빠져서 굴러갈 수도 없었어. 그리고 우린 팬들한테 사인도 많이 해줬었어. 데모가 끝나고 한 시간 동안 사인을 한 적도 있어. 그렇게 사인하는 일이 많았었는데, 90년대에 들어서는 그런 게 없어졌지.

누가 스케이트보드에서 약간 잘 되는 걸 하면, 모두가 따라 했어. Stacy Peralta가 1984년에 최초의 스케이트보드 영상을 만들었을 때도 그랬지. 그게 프로 스케이터 직업에 또 다른 할 일을 만들어준 계기가 됐어. 처음으로 프로의 중요한 할 일이 영상을 찍는 일이 된 거야. 난 1984년에도 프로였는데, 내가 Powell Peralta에 들어갔을 땐 나한테 프로 모델을 만들어주지 않는 계약이었어. 내가 처음으로 영상에 나와서 사람들이 내 보드를 찾기 시작하니까, Powell은 내 이름이 적힌 보드를 만들기 시작했지. 곧 Frankie Hill처럼 영상 파트를 만들고 바로 프로가 되는 스케이터들이 생겼어. 최초로, 대회에서 성적이 좋거나 데모를 잘 하는 스케이터가 아니어도, 프로가 될 수 있게 된 거지. 멋있는 영상 파트를 찍기만 하면 되게 된 거야.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이걸 이해할 수 없었고, 영상만으로 프로가 된 스케이터들은 거저먹은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어. 이전의 수익 구조를 써먹을 곳 찾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에, 모든 세대의 프로들은 이걸 문제 삼았어. 90년대에 이르러서는, 프로 스케이터의 직업은 그냥 혁신적인 스트리트 영상 파트를 찍는 것이 됐지.

 

 

1990년대

90년대엔, 대회가 더 이상 의미가 없었어. 완전 진보된 것이나 아무도 하지 못했던 트릭을 촬영하는 게 전부였지. 심지어 잡지는 러닝 시퀀스 샷을 찍지 않았어. 성공할 때까지 비싼 필름을 잔뜩 써야 했으니까. 대신 영상을 찍은 다음 그걸 프레임별로 캡처해서 만들었지. 프로 스케이트보드 계에선 오직 진보적인 것만 받아줬어. 최신의 트릭을 하지 않는 프로들이 업계에서 물러나는 것에 대한 기사들도 있었지. 아무도 프로 버트 스케이트보딩에 관심이 없었어. 엉덩이로 앉아서 힐밤을 하는 아이들이나, 그냥 보드를 타고 놀고 싶어 하는 아이들. 그러니까 당시 인기 있던 그 공격적으로 진보적이었던 태도에 관심 없는 사람들 중 엄청 많은 수가 보드를 그만 타게 됐지.

이때에는 프로 스케이터의 사전적인 정의가 굉장히 모호해졌어. 프로가 단순히 스케이트보드로 돈을 버는 걸 말한다면, 솔직히 당시 모든 아마추어들이 다 프로였던 거야.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대회에서 입상을 하거나 데모를 해서 돈을 벌면, 강제로 프로로 만들었어. 그런데 영상에선 그렇게 하지 않았지. 그리고 90년대 초에는 회사들이 아마추어들에게 차와 물품과 돈을 줘서 다른 회사로부터 빼왔어. 그리고는 자기 영상에 나오게 했지.

라이브로 보드를 잘 타는 프로들과, 영상에서 진보적인 트릭을 하는 데에 대부분의 시간을 쓰는 프로들로 나누어졌어. 영상에서는 아무도 하지 못했던 트릭을 하면서, 데모에서 멈추지 않고 보드를 타는 걸 못하는 프로들도 있었어. 어떤 프로들은 너무 진보적이었던 나머지, 자기가 하던 트릭도 잘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어. 혁신에만 집중했기 때문이야.

반대로, 현장에서는 보드를 엄청나게 잘 타지만, 진보적이진 않은 스케이터들도 있었어. 결론은, 당시엔 둘 중 하나라도 잘 했다면 살아남았다는 거야. 그 당시부터 오늘날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Ed Templeton이나 Mike Vallely 같은 스케이터는 자기 할 일을 잘 했기 때문에 살아남은 거야. Ed Templeton과 Mike Vallely는 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도 투어를 다녔고 데모도 엄청 잘 했어. 그들이 잘 알려진 프로로 계속 남아있는 이유 중 하나지.

 

 

2000년대

대기업의 옷이랑 신발 스폰서가 주는 돈으로 인해, 2000년대 프로들의 생계수단이 변했어. X-Games가 엄청나게 알려지고, 프로들이 주목을 받으면서 새로운 업계브랜드로부터 스폰을 받기 시작했어. 프로가 돈을 버는 방법이 정말 다양해진 거야. 새로운 일이 생겼지. 바로 메이저 스폰서가 무엇을 요구하든, 그게 프로로서 할 일이 된 거지. 어떤 프로들은 성공하기 위해서 브랜드가 쓰인 모자를 쓰고, 자기 런이 끝나는 즉시 브랜드가 찍힌 음료를 높이 들기도 해. 어떤 프로는 자기 보드 스폰서는 없지만, 에너지 음료 회사로부터 꽤 많은 돈을 받기도 하지.

 

 

2010년대

50년 동안 참 많이 변했어. 이제 보드 스폰서 회사들은 스케이터를 영입하기 전에, 그 스케이터의 신발이나 다른 대형 스폰서를 따져. 그런 스폰서들은 그 스케이터가 매체에 노출되도록 엄청난 돈을 쏟아부을 거거든. 프로와 스폰서(그리고 그 프로가 가진 다른 스폰서들)의 관계는 완전히 진화했어. Paul Rodriguez가 등장하기 전까진, 스케이트보드 전체가 이걸 표준으로 받아들이진 않았다고 봐. Paul은 제대로 된 진짜 스케이터로서 인정받도록 열심히 탔고, 동시에 대기업들에게도 매력적이었거든. 그 이전에는, 하드코어한 스트리트 스케이터들은, 대기업을 위해 타는 스케이터들을 인정하지 않았어. Paul이 그걸 깼어. 그리고 다른 스케이터도 Paul이 해낸 걸 해내고 싶어 했어. 이제는 모든 세대의 사람들이 성공한 프로 스케이터의 최고 본보기가 Paul이라고 생각해. 대부분이 대기업 광고를 따내기 위한 에이전시를 가지고 있어. 이젠 광고가 제일 중요해.

이젠 소셜 미디어도 중요해. 자기 소셜 미디어를 통해 어떻게 스폰서를 광고해줄지에 대한 내용이 계약서에 들어가 있는 경우도 많아. 스케이터를 영입하려고 하기도 전에, 그 스케이터의 소셜 미디어에서의 인기를 미리 확인하는 브랜드들도 있어. 스케이팅을 보는 안목조차 없으면서 말이야. 우리는 스케이터로서 우리가 좋아하는 스케이터가 잘 탄다는 걸 알잖아. 그런데 회사들과 사업가들은 그걸 몰라. 에이전시나 마찬가지지. 많은 외부 에이전시들은 스케이터에게 스폰서가 잘 잡히도록 자기들이 스케이터를 주조해낸다고 생각해. 이런 에이전시들이 물론 효과가 있을 수도 있지만, 프로 스케이터의 할 일은 결국엔 절대 변하지 않아. 진보적이어야 하고, 영감을 주면서, 사람들이 스케이트보드와 사랑에 빠지도록 만드는 거지. 다른 모든 혜택들은 그 능력에서 나오는 거야.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 이해를 못한다고 하더라도 말이야.

요새는 프로가 되면 좋은 시기야. 스케이트보드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기회가 이렇게 다양했던 적이 없잖아. 그런데 누가 알아? 이게 유지가 될지, 아니면 또 이상한 변화가 생길지? 좋은 프로 스케이터가 무엇인지에 대한 문제는 이제 모두가 자기 할 말을 할 수 있도록 열려 있는 거야. 스케이트보드 역사에서 이런 적이 없었지. 세계 최고의 프로 중 어떤 스케이터는 소셜 미디어에서 발탁되기도 해. 직업으로서 프로 스케이터의 업무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스케이팅이든 아니면 다른 걸로든, 다른 사람이랑 차별되는 방법을 찾는 게 훌륭한 프로 스케이터의 일일 거야. 정말 기억에 남고 뛰어난 프로는 항상 사람들의 생각과 기분을 바꿔왔고, 그럼으로써 스케이트보드의 방향까지 바꿔왔잖아.

 


출처: http://www.jenkemmag.com/home/2016/01/06/the-evolution-of-the-pro-skaters-job-according-to-lance-mountain/
<THE EVOLUTION OF THE PRO SKATER’S JOB ACCORDING TO LANCE MOUNTAIN>, 2016.1.6.
Words: Lance Mountain as told to Sean Mortimer (@judoair)
Original Illustrations: Michael Giurato (@badhair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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