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학으로 스케이트보드를 보면

정신분석학이 사람들 눈에는 별로일 수도 있지만, 스케이트보드에 대해 생각해보는 좋은 렌즈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 우리가 계단 위에서 하는 의식, 보드를 향한 분노 같은 우리의 행동들은 프로이트의 도움으로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돼. 프로이트의 이론이 너무 과격하고 신성모독인 면도 있어서 최근 학자들에게는 거부당하기도 하지만, 정신분석은 과학이 아니고 과학이 밝혀낸 진실을 알려주는 것도 아니라는 걸 잊지 말자. 정신 분석은 생각을 하는 방법이야. 손톱을 물어뜯는 습관, 어색한 친구 관계, 그리고 Andrew Reynold의 광기까지도, 그걸 어떻게 바라볼지 알려주는 거지. 정신분석을 스케이트보드에 대입하기 전에, 그게 어떤 건지 아는 게 중요해.

프로이트는 우리의 잠재의식을 세 가지 부분으로 구분했어. 이드(the id), 자아(the ego), 그리고 초자아(the super-ego). 자세한 설명은 못하겠지만, 스케이트보드로 넘어가기 전에, 대충 감을 잡을 수 있록 간단한 비유를 준비했어.

네 양옆에 이런 두 명이 있다고 상상해봐. 왼쪽에는 원시인이 있어. 음식을 구하러 다니고 섹스하는 것처럼 으르렁거리는 그런 원시인. 오른쪽에는 경찰이 있어. 규칙과 도덕적인 규율을 내세우는 경찰이야. 양쪽 다 너를 항상 끌어당기고 있고, 넌 그 가운데에서 중심을 잡고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아야 해.

“네 양옆에 이런 두 명이 있다고 상상해봐. 왼쪽에는 원시인이 있어. 음식을 구하러 다니고 섹스하는 것처럼 으르렁거리는 그런 원시인. 오른쪽에는 경찰이 있어. 규칙과 도덕적인 규율을 내세우는 경찰이야. “

 

여기서 원시인이 바로 이드야. 이드는 가장 원초적인 욕망으로 이뤄져 있어. 섹스하고 싶고, 폭력을 쓰고 싶고, 먹고 싶은 그런 욕망. 그건 항상 불타고 있고 우리 마음을 향해 끊임없이 말을 하고 있지. 우리는 이드를 가지고 태어났어. 영원히 가지고 갈 수밖에 없는 우리의 동물적인 측면이야. 경찰은 바로 우리의 초자아야. 환경과 도덕으로부터 받은 영향을 나타내지. 도둑질하지 말고, 학교에 가야 하고, 노인을 공경하고 그런 거 말이야.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대가인 Melanie Klein에 따르면, 우린 초자아 없이 태어난대. 대신, 세상을 살아가면서 초자아를 만들어내고, 사회의 규칙을 배우는 거야.

원시인과 경찰 사이에 서 있는 네가 바로 자아야. 가끔씩 한 쪽으로 쏠리지. 이드와 초자아는 네가 균형을 잘 잡고 있지 않을 때 널 쓰러뜨릴 힘이 있어. Klein은 사람들과 주변 물건들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초자아가 자란대. 그리고 주변의 기대에 못 미칠 때마다 초자아는 우릴 괴롭힌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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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이트보드에서 생각해보면, 우리는, 영상이나 죽이는 트릭을 본 기억으로부터 만들어진 초자아를 가지고 있다고 봐. 우리보다 잘 타는 스케이터를 보면서, 걔의 실력이 어떤지 기억하고, “멋있는 스케이팅”이 뭔지 조금씩 감을 잡는 거야. “멋있는 스케이팅”이란 건 우리 외부로부터 결정돼. 만약 다른 사람이 타는 걸 아예 보지 못했다면, 애초에 멋있는 스케이팅이란 걸 알지도 못할 테니까 말이야. 그 멋있는 스케이팅이라는 감각은, 보드를 탈 때마다 우릴 따라다니고 우리한테 야유를 보내. 경찰관이 사회의 규율을 우리한테 들이미는 것처럼, 스케이터의 초자아는 스케이트보드 씬에서 만들어진 높은 기준을 스케이터한테 계속해서 들이밀지.

그래서 우리가 자기 영상을 보고 구리다고 하는 건, 사실 우리가 Gonz나 Carroll이나 좋아하는 로컬 스케이터나 우리가 은연중에 우러러보는 스케이터들에 비해서 구리다고 생각하는 거야. 우리가 그 기준에 비해 못 미쳤을 때, 스케이터의 초자아는 우리를 더 잘 타라고 자극하고, 우리가 스스로 못났다고 느끼도록 만들 수 있어. 잘 안 될 때 우리 자아를 벌주는 거지.

(영상)초자아 – 우리가 어떻게 타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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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는 말하길, 자아는 공격을 당하면 여러 가지 방어 수단을 이용해서 그걸 방어하려고 한대. 그 중 하나가 투영(프로젝션, projection)이라는 거야. 사실은 우리의 문제인데, 문제의 원인이 우리가 아닌 외부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거야.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그 외부 원인을 공격하고 마치 내부 원인을 해결한 것처럼 스스로 속이는 거지.

우리가 보드에 집중할 때마다 이 투영이 작동하는 것 같아. 우리가 갑자기 분노하면서 스스로 만든 이상한 기준에 괴로워하는 건, 스케이터의 잘못이 아니야. 그런데 가끔 우리는 이걸 우리 내부 원인인 것처럼 여길 때가 있어. 그 고문관을 우리 자신이 아닌 보드에다가 투영해.

그렇게 보드를 짓밟아 쪼개버리면서 그 내부 원인을 편안하게 없애버릴 수 있어. 우리가 보드를 부실 때마다, 이 무생물인 장난감이 고통스러운 감정을 유발시켰다고 스스로 확신하는 거야. 사실은 아니지. 고통스러운 감정은 사실 우리가 스스로 만든 거잖아. 마음속에서 생긴 긴장감 때문에, 보드는 그냥 편리한 희생양이 되는 거야.

(영상) Kerry Getz – 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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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이트보드에서 또 다른 대처 메커니즘은 바로 마초이즘이야. 혹은 심하게 다치면서 어쩐지 기분이 좋아지는 거지. 프로이트는 말하길, 우린 몸이 다치는 걸 좋아하기도 한대. 우리 속에서 만들어지는 맹렬한 긴장감을 편리하게 잊어버릴 수 있다는 점 때문이야.  전쟁 중에 신체적으로 부상을 당한 사람은 전쟁 트라우마에 덜 시달린다는 걸 프로이트는 발견했어. 오히려 깔끔하게 부상 없이 전쟁을 겪은 사람이 더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워한다고 해. 프로이트는, 신체적인 부상은 고통의 원인이 (내가 아닌) 외부에 있다고 여기게 만든다는 걸 이론으로 만들었어. 고통의 원인을 몸에 난 상처에서 찾는 거지. 전쟁을 겪으며 죽음을 목격했던 정신적 고통에서 찾는 게 아니라.

부상당한 병사처럼 스케이터가 고통을 즐긴다고 하면 좀 이상하게 들릴 수 있는데, 일부 스케이터는 정말 그렇다고 생각해. Anthony Van Engelen이 Thrasher에서 했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봤어. “보드를 타면서 완전 몸이 박살 나버렸을 때 내가 최고라고 느껴.” AVE가 여기서 말한 게 (내가 틀려도 내 강냉이를 털지 말아줘), 몸이 다치는 게 보드를 타면서 얻는 정신적인 고통을 완화시켜준다는 말 같아. 보드에서 말고 다른 곳으로부터 생긴 고통도 마찬가지겠지.

신체적인 고통은 이해하기가 쉬워. 빡센 인생으로부터 받는 정신적 고통에 비하면, 어쨌든 (얼음찜질이나 휴식으로) 해결하기도 훨씬 쉽지. 빡세게 넘어지는 게, 빡센 어린 시절을 보내는 것보다 훨씬 극복하기 쉽잖아.

(영상) Geoff Rowley – 마초이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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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구하는 것으로서 스케이트보드의 문제도 있어. 왜 우린 새로운 트릭을 하고 싶어 할까? 왜 랜딩을 성공하면 즐거울까? 내 이론은, 솔직히 말하면, 스케이트보드를 배우는 과정이 우리를 다시 어린 아기처럼 느끼게 만들기 때문이란 거야. 막 걸음을 배우는 아기.

스케이트보드에서의 큰 즐거움, 그리고 아기가 느끼는 큰 즐거움은, 드디어 자기 몸을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다는 느낌이야. 우리 마음이 원하는 것과 신체 능력의 간극을 극복하는 그 느낌말이야. 개인적으로 난 트릭을 랜딩하는게 내 몸이 그래도 잘 작동한다는 표시 같아. 마음으로 원하는 대로 자기 몸이 움직일 때 기쁨을 느끼는 또 다른 유일한 존재는 아기 밖에 없잖아.

이건 아주 원초적인 이드의 즐거움이야. 단순히 마음이 원하는 대로 몸이 움직이는 기쁨. 스케이터로서 우리는 40대든 50대든 계속 보드를 타고 새로운 트릭을 배우면서, 아기만 느낄 수 있는 귀한 즐거움을 계속 누리게 되는 거지.

스케이트보드에는 또 다른 종류의 쾌감도 있어. 나도 잘 이해하기가 어려운 부분인데, 가끔 궁금해. 왜 우리는 멋있는 스타일을 가지려고 노력할까? 단순히 트릭을 하는 걸 넘어서, 왜 트릭을 멋있게 하고 싶고, 옷도 잘 입고 영상에서도 멋있게 나오길 바랄까?  왜 우리는 아름다워지려고 노력할까? 이건 단순히 마음이 원하는 대로 몸을 움직이는 차원이 아니야. (이드의 동물적인 힘에 지배받는) 몸을 (스케이트보드의 초자아 속에 있는) 마음속에 있는 아름다움의 기준에 맞추는 거지.

아마 우리가 좋은 스타일을 가지고 있을 때, 우리의 이드와 초자아 모두 즐겁기 때문인 것 같아. 좋은 스타일을 가진다는 건, (단순히 트릭을 성공하고 싶어 하는) 이드의 욕망을 채워주고, 동시에 (위대한 스케이터처럼 타고 싶고 그들의 미의 기준을 뛰어넘고 싶어 하는) 초자아의 욕망도 채워주는 거지. 아까 이야기한 비유에서 원시인이 자아한테 “트릭을 랜딩해서, 몸을 컨트롤하라고!”라고 말하고 있었지. 그리고 반대쪽에선 경찰이 “스케이트보드의 세계가 너한테 기대하는 것처럼 아름답게 타라고!”라고 말하고 있어. “그래, 할 수 있어.”라면서 양쪽에다가 응답하는 거지.

좋은 스타일을 가진 스케이터는 그렇게 양쪽에서 당기면서 넘어뜨리려고 하는 두 힘 가운데에서 굳건히 서 있는 거야. 이드가 센 스케이터는 컨트롤에 집중하면서 아마 스스로를 더 크고 무서운 장애물로 몰아가거나, 혹은 기술적으로 어려운 트릭을 하려고 노력하지. 컨트롤에 대해 도전하고 결과에 보상받는 거야. 초자아만 있는 스케이터는 몸이 움직이는 모션만을 노력해. 트릭을 랜딩하는 거나 이드를 오싹하게 만드는 거에는 별 관심이 없어.

좋은 스타일은 갖고 있다는 건, 원시인/아기와 경찰을 모두 만족시키는 거야. 잔인한 동시에 지적인 거고, 병신 같으면서도 고귀한 거지. 또 어쩌면, 프로이트가 허구헌날 말하는 성적인 부분(예를 들면, 남근 상징으로서의 스케이트보드)을 실제화하는 거지. 난 그거까진 안 다룰래.


출처: http://www.jenkemmag.com/home/2015/10/14/psychoanalyzing-you-and-your-skateboard/
<PSYCHOANALYZING YOU AND YOUR SKATEBOARD>, 2015.10.14.
Words: Morley Musick
Original Illustrations: Michael Giurato (@badhair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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