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Lucero와의 인터뷰


여전히 슬래피를 조지는 lucero / photo: dave swift (2014)

노컴플라이와, 슬래피, 그리고 쉐입 데크의 공통점이 뭘까? 모두 지난 25년 동안 John Lucero에 의해 창시됐거나 발전됐고, 2015년인 오늘날에도 인기가 많은 것들이라는 점이야. 그렇지만, John은 잡지에서 별로 다뤄지지도 않고, 초기 스트리트 스케이트 영상에서 제대로 된 파트도 없어. 그는 1990년부터 지금까지 100% 독립적으로 Black Label을 운영해오고 있어.

John은 돈이 많거나 사업 수완이 뛰어나진 않지만, 순수한 사랑과 열정을 가지고 있어. 스케이트보딩에 John 같은 사람이 많아진다고 우리가 돈 벌 일이 많아지진 않겠지만, 이 문화와 진정성 그리고 재미를 위해서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더 많아질 거야.


최근 1~2년간 너의 회사 Black Label은 별로 활동을 많이 하지 않는 것 같아. 영상이나 광고, 새 스케이터도 안 보이고. 어떻게 되고 있어?

Black Label은 순전히 내 지갑으로 운영되고 있어. 그리고 내 지갑은 텅텅 빈 상태야. 돈을 버는 족족 회사로 들어가. 투어, 비디오 같은 걸로… 우리가 돈이 생기면 그렇게 쓰고, 돈이 없을 땐 그냥 가지고 있는 뭔가로 뭐든 해. 내 에너지나 지식 같은 거 말이야.

지난 1~2년간 힘들었어. 돈 때문에 많은 스케이터가 떠났어. 그래도 그들 모두 여전히 내 친구들이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어. 내가 걔네를 사랑하는 줄 걔네도 알고, 걔네도 Black Label 스케이터였을 때가 자기 인생에서 제일 멋있었던 때라고 이야기하기도 해. 그 친구들이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 내가 잘 이해하고 있다는걸, 그들도 알아주면 좋겠어. 물론 내가 그들을 위해 한 것들도 그들이 똑같이 알아주면 행복하지.

요즘 같은 때에 이 나이가 되니, 다들 돈을 못 벌어. 예전이랑 달라. Nike나 Mountain Dew 같은 스폰서를 가진 소수의 몇 명을 빼면 말이야. 그런데 그게 나쁜 게 아니야. 멋진 일이야. Nike가 그렇게 많은 돈을 줄 만큼, 스케이트보드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다는 거고, 그건 대단한 거잖아. 스케이트보드에서 대단한 일을 해냈다는 뜻이지. 아무것도 아닌 일로는 그런 돈을 못 받지.

초기의 스케이트보드 / courtesy of black label skateboards (1980)

너는 다른 스케이트 회사의 스케이터를 뺏어오지 않는 걸로 알려져 있어. 일방적으로 영업 전화를 돌려서 뺏어오지 않는다는 거지. 어떤 이유에서야?

맞아. 그렇게 스케이터를 뺏어오기 위해 하는 영업용 전화 통화, 그게 내가 스케이트보드 바닥에서 유일하게 싫어하는 거야. Gino Ianucci가 뉴욕의 Long Island 지역에 있을 때, 내가 그의 첫 스폰서였어. 걔한테 보드를 보내줬고, 캘리포니아로 이사했을 때도 계속 보내줬어. 입소문이 돌자마자 Gino한테 영업 전화들이 가더라고. 사람들은 “와, Black Label에서 이렇게 멋있는 애가 타는 구나”라고 반응하지 않고, “야, 너 우리 회사 와라.”라고 반응했어. 난 그렇게 안해. 그런 전화를 하지도 않고 한 적도 없어.

우리 스케이터 한 명이 콘테스트에 있었는데, 어떤 회사 사장이 그 친구 폰을 붙잡고 안 놔주면서 “Black Label에서 너한테 얼마 주길래? 내가 두 배로 줄게.”라고 하더라.  와, 씨발. 이건 아니잖아. 새롭고 멋있는 애가 있으면 다들 어떻게든 자기 회사가 데려가려고 해. 그냥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거에 만족하지 않고 말이야.

오해하진 마. 스케이터들도 더 좋은 기회를 만날 수도 있어야지. Gino도 옳은 결정을 내린 거야. 그래도 세상엔 멋진 스케이터가 정말 많잖아, 특히 요즘엔. 이해하는데… 가끔 그냥 가슴이 아픈 거지.

오래전 일이라, 이젠 아무렇지도 않아. 그냥 내가 혼자 지키는 신념일 뿐이지. 항상 밑바닥부터 팀을 성장시키려고 했어. 그게 Gino를 영입했던 이유였고. 우리는 Gino랑 Jason Dill이 어릴 때 둘 다 스폰을 했었다고. John Cardiel의 첫 번째 프로 보드도 우리가 만들었어. 누군가를 알아보고, 데리고 와서 기회를 제공하고, 첫 번째 프로 보드를 선사하는 걸 난 자랑스럽게 생각해. 내가 좋아하는 일이야. 스케이트보드로부터 내가 받은 걸 다시 스케이트보드에 보답하는 듯한 기분이야.

오래된 lucero 광고 / photo courtesy of chromeball

1984년에 나온 너의 그 “속박하고 있는 여자 그래픽“은 좀 야했어. 혹시 스케이트보드 역사상 네가 처음으로 논란의 여지가 많거나, 공격적인 스케이트보드 그래픽을 디자인한 거 같아?

그렇게 됐지 뭐. 당시에는 스케이트보드가 워낙 인기가 없었기 때문에 몇 장밖에 생산이 안됐어. 그림이 너무 공격적이고 상스럽고 징그럽다고 사람들이 다시 Variflex로 보드를 많이 반품했었지. 사람들이 보드를 반품한다고 Variflex에서 나한테 알려줬을 때 난 “와 씨발. 잘됐다!”라고 생각했어. 한 200장 밖에 안 만들었을 걸. 멋진 첫 번째 그래픽이었어.

그리고 Variflex를 그만두고 다른 팀으로 갔더니, 걔네가 그 보드에서 이름 부분만 John Lecero에서 Grim Ripper로 바꿔서 그대로 다시 생산하더라. 어렸을 땐 그게 화났었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 보드를 다시 만들어 낼 만큼 그게 그들한테 의미가 있었던 거야. 어느 정도 가치를 가지고 있었거든.

법적으로 대응하려는 생각은 안 했어?

아니. 그런 생각은 안 했어. 어렸을 땐 그냥 화가 났던 건데 좀 웃겨. 깊게 생각하진 않았어. 언젠간 복수해야지[웃음].

회사 소유주로서 그리고 아티스트로서, 너의 아트워크에 대해 도덕적인 책임감이 들기도 해?

지금은 아버지로서 세상에 어떤 걸 내보일 수 있고 어떤 걸 내보여야만 하는지에 대해 다른 시각이 생겼어. 이젠 그 양단을 다 이해해. 예를 들면, 떨은 그만할 만큼 한 것 같아. 이젠 무신경한 상태까지 왔어. 스케이트보드 커뮤니티가 가지고 있는, “어떻게 하면 더 막 나갈 수 있을까?” 같은 정신 상태 같은 거야. 하지만 실제로는 더 막 나가진 않아. 나도 아직도 맥주나 담배 그림이 있는 보드를 좋아하기도 해. 그래도 데크 전체가 떨로 가득 차 있는 정도까지는 안 좋아해.


photo courtesy of black label skateboards

마약은 프로 스케이트보딩 전반에 쫙 퍼져있잖아. 30년 넘게 보드를 타면서 너도 그런 라이프스타일에 빠진 적 있어?

내 대부분의 스케이트보드 커리어 내내 술 퍼먹으면서 파티를 해왔어. 알코올을 과하게 들이부었지. 내가 했던 바보짓이나 큰 문제들은 다 술 때문에 생겼어. 다행히 내가 파티를 원할 때 하고, 하기 싫을 땐 멈출 순 있었어. 불행히도 말이야, 나처럼 주량이 좋고 알코올 중독인 것 같지는 않다고 해서, 그게 몸과 뇌에 영향을 주지 않는 건 아니야.

오랫동안 보드를 타면서, 그 문제는 항상 따라왔었어. 70, 80년대와 차이점이라면, 당시에는 미디어가 그걸 잡지에서 조장하지는 않았다는 거야. 물론 뒤에서는 그런 게 있었지. 스케이터가 약에 취하도록 미디어가 조장한다는 사실, 그게 스케이트보드에서 제일 실망스러웠던 거야. acid 하고 Street League 가기 같은 거, 오줌 마시고 파티하는 그런 시리즈는 다 멋지고 나도 좋아. 걔네들 장난 아니잖아. 그런데 그런 것만 하루 종일 보여주는 건 어린아이들한테 분명 피해가 가. 내가 늙어서 그런 거나 그걸 할 자유가 없다는 건 아니야. 모두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할 기회를 가지고 있지만, 조금만 톤을 낮춰도 되잖아.

“스케이터가 약에 취하도록 미디어가 조장한다는 사실, 그게 스케이트보드에서 제일 실망스러웠던 거야.”

 

그 좋은 예로, 70년대에 우리가 클 때 말이야. Duane Peters가 콘테스트에서 우승하면, 그 펑크 헤어스타일로 멋있게 찍힌 사진을 볼 수 있었어. 걔가 맥주에 취한 사진이나, 얼마나 얘가 맛이 갔는지에 대한 기사 같은 건 없었다고. 자라나면서, 어떤 게 옳은 지 언떤 게 안 좋은지 알아나갔고 그렇게  배우는 거였잖아. 경험에 의해 스스로를 알아나가는 그 소중함이 더 이상 없는 것 같아. 모두 이미 쫙 펼쳐져 있지. 다들 비디오를 만들면서 더 극단적인 걸 하려고 노력해. “자, 우린 이렇게 토해. 이렇게 바지에 똥을 지려. 니가 상상도 못할 만큼 우리는 떨을 많이 피워.”라고 하면서 말이야.

맞아. 비디오에 나오는 사람을 다들 또 뛰어넘으려고 하지.

응. 그들을 단순히 뛰어넘으려는 게 아니라, 비디오 속에서 다른 사람을 뛰어넘으려고 해. acid를 세 방 맞고, 떨 4 모금 빨고, 테킬라 한 병을 들이부은 다음에 필르밍하고 보드를 타! [웃음] 요샌 좀 그런 게 줄어들기도 했어. Andrew Reynolds 같은 친구들이 조절을 해주는 것 같아. 더 많은 친구들이 나서서 이야기를 해주면 좋겠지만, 아무도 꼰대가 되긴 싫잖아, 그치? 그래도 동시에 그런 영향력 있는 친구들이 아이들이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면 참 좋겠어.

photo courtesy of black label skateboards

80년대에 프로로 활동할 땐, 돈을 얼마나 벌었어?

프로이긴 했지만, 내가 최고는 아니었어. 그래도 내 스스로 아트워크를 만들어서 내 보드는 최고로 잘 팔리는 보드였어, 철창 밖으로 뛰쳐나오는 꼬마 그래픽 말이야. 로열티를 2$씩 받아서, 한 달에 15,000$에서 16,000$ 정도를 벌었어. 그 보드 하나로, 그 작은 로열티로, 그렇게 번 거야. 그게 내가 보드에서 제일 큰 돈을 만졌을 때야. 당시 Vision의 수익 구조를 생각해봐. 내 보드, 내 것보다 훨씬 잘 팔렸던 Mark Gonzales 보드, John Grigley 보드, 그리고 제일 많이 팔렸던 Gator의 보드가 있었어. Vision은 분명 당시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을 거야.

“로열티를 2$씩 받아서, 한 달에 15,000$에서 16,000$ 정도를 벌었어.”

 

쉐잎 데크가 인기가 많아져서 좀 실망했어? 네가 이미 옛날부터 색다른 쉐잎 데크를 만들어왔었는데, Welcome 같은 브랜드에서 그걸 본격적으로 해서?

걔네가 잘 돼서 나도 기분 좋아. 멋있어. 우리가 쉐잎 데크를 오랫동안 만들었다고 해서, 우리가 그걸 창시했던 건 아니야. 내가 쉐잎 데크 시장을 키우는 데에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기뻐. Welcome 멋있잖아. Black Label의 쉐잎 데크를 더 알리는 데에도 걔네가 도움이 됐어.

예전엔 8인치가 넘는 보드는 무료로 줄 수도 없었어. 다 7.5에서 7.75인치였고, 우리의 8.25인치 보드를 “올드스쿨 하드코어!”라고 생각했어. 새로운 쉐잎을 원하는 건, 애들이 자기 친구랑 씨발 똑같은 셋업으로 하는 게 질려서 그런 걸 거야.

스케이트보드가 다시 그렇게 돌아 간다는게 좋아. 역-진화라고 해야 할까? 예전의 것을 다시 가져오는 거야. 한 발짝 뒤로 가고 두 발짝 앞으로 오는 거지. 우린 똑같은 걸 아주 오랫동안 했잖아, 이젠 새로운 걸 해보자고. 과거로부터 조금 가져와야 한다면, 그렇게 해! 사람들은 스케이트보드의 풍부하고 멋진 역사를 발견하기 시작했어. 10년 전 나한테는 역사란 그저 낡은 거였어. 지금은 정말 “역사”라는 걸 가지게 돼서 좋아. 요새 우리가 만들고 있는 쉐잎 데크나, 다른 회사들이 만들고 있는 쉐잎 데크를 보면, 80년대의 쉐잎이랑은 또 달라. 90년대 초기 쉐잎이랑도 다르고. 좀 더 아름답고 멋있어진 새로운 쉐잎이야.

스케이트보드는 100% 날 것처럼 그대로 살아있고 개방돼있어. 기분 좋아. 그래서 신이 나. Black Label 입장에서도 좋은 시기라고 봐. 사람들, 아이들, 스케이터들이 다시 브랜드들을 되찾고 싶어 해. 그동안 사람들은 아무것도 되찾으려고 안 하고, 자기 흰색 무지티, 자기 큰 바지, 자기 담배가 중요했어. 그래서 브랜드들도 의미가 없었지. 사람들은 다시 브랜드를 원해. 어떤 것의 일부가 되기를 원하는 것 같아.


Black Label은 원래 Blitz Distribution에서 유통됐었는데, 거길 나와서 이젠 집에서 DIY스타일로 네가 회사를 운영하고 있잖아. 왜 그런 거야?

명확한 이유가 있었어. 모델이랑 브랜드가 그걸 유통하는 Blitz Distribution와 맞지 않았어. 더 이상 할 수가 없었지. 간접비용도 너무 많이 들었고, 활동도 별로 없었어. 모두가 그거 때문에 고생이었기 때문에, 거길 나오면서 그 문제를 해결한 거야.

예전 모델은 이제 사그라지고 있어. 분배할 만한 이익도 나오지 않아. 모든 게 너무 커져버렸고 이제는 그걸 다시 줄여야 하는 시점이야. 내 손으로 되찾아서 직접 하려는 입장이야. Black Label을 위한 최선이고 내 팀을 위한 최선이고, 스케이트보드를 위한 최선이기도 해. 다시 커브 레벨로 되돌아간 거고 살아 있게 만드는 게 최선의 방법이야. 그렇게 하려고 해.

롤러코스터 같은 거야. 몇 개를 올라갔다 내려오고, 충돌도 해. 90년대 초기에도 그랬지. 그런 충돌도 좋은 점이 있어. 강한 자만 살아남을 수 있는 곳에서 생존 기술을 배우게 된다는 점이야. 가장 창의적이고 일과 시간을 바쳐야 하는 그런 거야. 그냥 누워서 죽기를 거부하는 거지.

Black Label과 내가 26년간 버틴 이유는, 일을 해내기 위해 뭐든지 했기 때문이야. Black Labe을 쓰레기 더미에서도 운영했었고, 작은 창고에서도 운영했어. 잘 될 때는 친구들과 가족도 고용했어. Giant나 Blitz 같은 유통사랑 일을 했었고, 그들은 다 훌륭한 사람이자 훌륭한 사업가야. 그런데 그런 유통 구조는 이제 과거의 것이야.

“스케이트보드는 100% 날 것처럼 그대로 살아있고 개방돼있어. 기분 좋아.”

 

Black Label을 되게 높은 가치가 있는 걸로 인식하지만, 내가 쓰레기통에서 혼자 사람들한테 전화해가며 운영할 때도 있었어. 룸메이트한테 방을 빌리기도 했고, 복도에서 “Black Label 스케이트보드입니다.”라고 전화 응대를 했고, 화장실에 앉아서 한 적도 있어!

지난 10년간 모든 일들이 커지고 사람들이 자기 회사를 매각하기 시작했어. Rocco가 자기 회사를 3천만 달러에 팔면서 시작됐지. 그걸 보고 스케이터들이 자기 회사를 다 팔기 원했어. 그래서 Element가 Billabong에 팔린 거야. 스케이터가 가지고 있던 회사들의 주 관심은 대표 직함 같은 걸 가지고 있는 거였어. 사업가들은 산업 전체를 먹어버리고 스케이트보드는 기업화됐어.

조금 조절을 하면서 무엇이 우리한테 중요한지 생각해볼 좋은 시기지. 그냥 스케이트보드잖아. 재미있잖아. 친구들이랑 커브에서 콜라 마시면서 노는 거잖아. 그게 씨발 스케이트보드라고. 대표 직함 같은 좆같은 게 아니라. 그걸 아는 사람들은 지금 신났다고.

내가 알기로는 Label Kills(2001)이 너의 첫 번째 모던 스케이트 파트였는데. 넌 왜 그렇게 영상이 없어?

[웃음] 아마 내 시대에서 내가 제일 기록되지 않은 스케이터일 거야. 난 그냥 친구들이랑 놀았어. Neil Blender랑 Lance Mountain은 항상 최고 잡지의 사진가들이랑 촬영을 하러 갔고, 난 집에서 친구들이랑 커브를 타고 놀았지. 그런 기회를 많이 놓친 것 같아. 지금 돌아보면 그때 더 그런 걸 했어야 했는데… 당시 사진이 거의 없거든. 아무것도 없어. 나와 내 초기 스트리트 스케이트보드에 대한 어떤 기록물도 없어. 우린 그냥 했거든. 기억과 이야기 속에서만 존재하는 거지. 지금까지 상황이 발전된 게 감사해. 이 스케이트보드 세상이 나를 알아주는 걸 생각해보면, 정말 친절한 거 그 이상이야.

네가 슬래피를 처음 만든 거지?

다들 내가 처음 했다고 하고, 나도 그걸 받아들여. 그래도 받아들이기에 부담스러운 면이 있어… 단순한 커브 그라인드잖아. 길을 따라 타고 가다가 커브로 꺾어서 그라인드 하는 거야. 그런데 진짜 슬래피는 앞쪽으로 힘껏 끌어당겨서 씨발 앞쪽 트럭을 들지 않고 하는 거야. 앞 트럭이 먼저 부딪히고 뒤쪽 끝 힘으로 안쪽으로 돌리면서, 뒤꿈치를 이용해서 싹 위쪽으로 올라가면 돼. 그게 슬래피야. Lance Mountain과 나의 기술이지. 나 혼자 만들어 낸 건 아니야. 주변에 많은 친구들이 있었어.

노컴플라이도 네가 처음 한 거지?

노컴플라이는 본레스가 처음 나온 다음에 바로 시작됐어. 본레스는 한 번 배우기만 하면 버트든 스트리트든 어디에서나 적용할 수 있는 트릭이야. 그 트릭으로 스트리트 스케이팅이 시작된 면도 있어. 본레스를 할 때 앞발을 땅에 딛고 공중으로 날잖아. 그런데 난 보드를 잡지 않고 커브에다가 그걸 하는 법을 알아냈어. 주차장 블록에다가 본레스 봉크를 하는 법을 알아내서 그렇게 놀았던 거야. 손을 쓰지 않는 본레스.

주차장 블록에다 손을 쓰지 않고 본레스를 하고 있었는데, 같이 있던 Neil Blender가 그걸 보고 “야, 난 모르겠어. 모르겠어. 어이없어. No comply.”라고 해서 그 이름이 생긴 거야. 이해가 안 됐기 때문에 노컴플라이라고 부른 거야.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노 콤프레넨데(comprenende – “understand”의 스페인어, 땡큐젠켐)”. 그 기술을 하는 방법이 말이 안 됐거든. 난 그걸 커브 조지기(curb smashers)라고 부르기도 했어. 농담에서 시작된 건데, Neil이 광고에서 그걸 하게 됐고 그때부터 퍼졌지.


최근 lucero / photo: sofie flores (2014)

그럼 노컴플라이는 네가 보드를 주차장 블록에다 후려갈기면서 시작된 거구나. 그럼 언제부터 무릎으로 보드를 쳐서 팝을 주는 방법을 쓰게 된 거야?

그건 조금 나중이야. 처음에는 주차장 블록이나 보도블록으로만 팝을 넣었어. 우린 프레셔 알리, 크랙 알리를 하곤 했는데, 크랙 알리만 하는 게 스케이트보드에서 제일 재미있을 때가 있잖아. 가끔 엄청 오랫동안 그런 것만 했어. 땅바닦의 몇 인치 부분만을 써서 완벽한 걸 하는 거니까 씨발 얼마나 멋있어. 이야기했듯이 커브에 앉아서 그냥 놀다가 하게 된 거야. 죽치고 앉아서 콜라 마시고 노가리 까면서 매일 그러고 있었어. 그러다 보드 좀 이리저리 타고. 항상 보드를 타고 쏘다녔지.

가끔은 당시의 필름이나 영상 같은 게 없는 게 진심으로 감사해. 그냥 보도블록에서 그라인드하고 있는 범생이들이었거든. 존나 쿨하고 그런 게 아니었어. 인생에서 멋있었던 시간일 뿐이지. 이제는 모든 게 너무 지나쳐서, 추억을 가질 필요조차 없어. 밖에 나갈 때마다 항상 기록되니까.

“다음에 친구들이랑 스트리트에서 보드를 탈 때 이렇게 해봐. 폰이랑 비디오카메라는 집에다 두고, 그냥 즐기면서 무슨 일이 생기는지 봐봐.”

 

맞아. 스케이트 파크에 가면, 다들 보드 타는 거 아니면 폰만 붙잡고 있잖아.

다음에 친구들이랑 스트리트에서 보드를 탈 때 이렇게 해봐. 폰이랑 비디오카메라는 집에다 두고, 그냥 즐기면서 무슨 일이 생기는지 봐봐. 아니면 한 시간만 차에다 폰을 모두 둔다든지. 폰으로 친구를 찍으면, 다들 폰에 집중해. 우리 삶에서 볼 수 있는 범위가 줄어드는 거야.

그렇게 해봐. 힘들 거야. 뭔가 안 하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들고. 너 어떨 때 폰도 없는데 다리에 진동이 오는 느낌 받은 적 없어? 유령 진동으로 네가 네 주머니를 쓰다듬고 있다고!  폰이 없이도 충분히 하루를 살 수 있어. 멋있는 추억을 가지고 기록해야만 한다는 생각 없이 하루를 살아봐. 기록하지 않으면 더 네가 친구와 일대일로 있게 될 거야. 정수기 근처에서 더 많은 이야기가 있잖아. “요새 어때?” 나 “학교에서 Betty 봤어? 예쁘던데?” 같은 말을 하면서. 항상 폰만 붙잡고 있기 때문에 많은 걸 놓치고 있다고 봐.

인생에서 최고의 추억 중 하나는 그냥 친구랑 노는 거야. 보도블록에 앉아서 농담 따먹기 하면서. 예전 스케이트보딩의 아름다움이었지. 폰이나 인터넷 없이 아주 소수의 필르머만  있고, 너와 친구들과 추억들로만 기억하는 거지. 그런 게 제일 오랫동안 간직되는 거야.

 


출처: http://www.jenkemmag.com/home/2015/02/02/the-john-lucero-interview/
<THE JOHN LUCERO INTERVIEW>, 2015.2.2.
Interview: Ian Michna
Photography: Dave Swift (@daveswift01), Sofie Flores & John A. Grigley.
Special Thanks: Black Label Skateboa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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