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hmir Brown 인터뷰

Love Park가 2016년에 폐쇄되고 풀이 나고 평평하고 렛지 없는 길이 돼버린 이후, 많은 사람들이 필라델피아 스케이트보딩을 떠났어. Mark Suciu는 뉴역에서 공부하러 뉴욕으로 갔고, Ishod Wair는 항상 서부 쪽에 있고, Kyle Nicholson은 바르셀로나에서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지.

Love Park에 울타리가 생긴 지 4년이 넘는 시간이 지난 뒤, 필라델피아 씬은 Muni에 샵을 간단하게 차리고 새로운 플라자 스케이터들을 만들어 내며 자기 입지를 굳히고 있어.

그 무리의 선두에는 필리 로컬 Jahmir Brown이 있어.

연속으로 하는 양쪽 스탠스 렛지트릭이나 미친 팝뿐이 아니라 Jahmir는 나이에 맞지 않게 현명하고, 선배 스케이터들도 힘들어했던 커리어 결정을 벌써 내렸어. 이 바닥에서 신참이지만 앞으로 자주 보게 될 사람이야.

 


 

 

스케이트보드에는 10년을 주기로 배기 핏이랑 스키니 핏 유행이 바뀌었는데, 앞으로 10년 뒤 슬림 핏을 입을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웃음] 그래, 너.

씨발, 아니! [웃음] 13살 때 스키니를 입었어. 매일 바지를 찢었었어. 스키니 바지는 멋없다고 생각해. 그리고 다시는 멋있어 보이지도 않을 거야. 다시 유행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난 죽을 때까지 존나 큰 스웨트 팬츠를 입으려고. 내가 좋아하는 건 내가 알아. 조금 통을 줄일 순 있겠지만 배기핏보다 줄이진 않을 거야.

 

 

흑인이 보드를 타면, 백인 스포츠 한다는 놀림을 당하는 일이 많잖아. 필라델피아에서 너도 그런 놀림을 당했어?

응. 필리 서쪽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 필리 남서쪽에서 자랐는데, 거기는 장난 아니었어. 나를 다구리 까기도 하고 협박도 했어. 내 예술을 방해하려고 했어. 보드 탄다고 여러 명이 나를 때리고 협박하고 총을 머리에 겨누기까지 했으니. white boy라고 부르고, 동네에서 꺼지라고 하고. “왜 그런 거 해? 왜 백인처럼 해” 그런 거 있잖아.

 

 

도시에서 자라는 아이들한테 아직도 그럴까?

분명히 바뀌었어. 나 같은 사람들이나 생각이 비슷한 스케이터들이 끈질기게 해왔기 때문에 바뀐 거라고 생각해. 도시에서 매일 실제로 보드를 타고. 사람들이 그걸 보면서 스케이트보드 유행이 쿨해진 거지.

이 사람들이 바보가 아니야. 씬이 이미 있는 걸 알고 있었고 그 사람들이 점점 늘어간다는 것도 알았지만, 우리가 하지 않길 바랐던 거야. 하지만 이젠 존중받지. 어느 정도는 말이야. 보드로 돈을 버는 것도 목격하지. Lil Wayne이 타는 것도 보고 “와 저거 멋있다” 하겠지. 난 “내가 그 새끼보다 훨씬 나”라고 생각하지만, Lil Wayne은 쿨한 이미지니까 [웃음].

 

 

 

Lil Wayne을 만난 적 있어?

응, 새벽 3시에 Love Park에서 만난 적 있어. 2013년인가 2014년쯤이었어. 그날 엄청 늦게까지 거기서 보드를 타고 있었어. 우리 친구 Tony Davis도 있었는데 걔가 “Lil Wayne의 투어 버스 있더라, 우리랑 보드 탄다고 곧 나온대!” 우리는 미친놈처럼 걜 쳐다봤지. “개소리하지 마.”라고 했지. 그리고 5분인가 10분 뒤, Lil Wayne이 보드를 가지고 존나 큰 보디가드 두 명이랑 걸어오고 있더라고.

그리고 우리랑 보드를 탔어. 자기를 소개하고 잠깐 이야기를 하고, Wayne이 맨 위쪽 레지에 크룩을 걸더라고. 와 씨발, 이거 꽤 높은 건데. 길게 밀진 않았지만 어쨌든 했어. 와 Weezy F Bbaby가 Love Park에서 크룩을 걸고 있구나. 놀랐지. 만나서 존나 재미있었어.

우리는 그래도 쿨하게 있었는데, 거기 사는 홈리스들이 전부 몰려오기 시작한 거야. 그러더니 화나서 “그냥 보드 타고, 스케이터 호미들이랑 있으려는데, 참..”라고 하더라고. 실망하고 결국 떠났지. 대박이었어.

 

 

Love Park가 없어지기 전에 거기서 보드를 탄 마지막 세대인 게, 너한테 어떤 의미야?

그 장소를 home이라고 부를 수 있어서 좋았어. 결국 없어졌지만. 멋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지금까지 친구야. 10년이 지났는데도 말이야. 그게 어떤 건지 모르고 자랄 아이들이 많겠지.

마지막을 기억해. 언제든 이제 울타리가 쳐지는 걸 알고 있었고 최악의 상황을 준비하고 있었어. 뭘 할 시간이 없었어. 그러다 어느 날 그렇게 된 거야. “씨발, 끝이구나.” 마치 내 집이 불타서 무너지는 걸 보는 기분이었어. 진짜 슬픈 일이야.

 

 

 

필리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스케이팅이나 도시가 어떻게 변한 것 같아?

젠트리피케이션이 좆같아. 그런데 뭐 어쩌겠어? 도시의 건물도 많이 변했어. 우리 스팟들은 거의 다 없어졌어. 새로운 스팟이 많지만, 벌써 다 knob(보드 못 타게 박아놓은 쇠)을 달아놨지. 싼 음식점도 없어졌고 엄청 비싸졌어. 월세도 비싸졌어. 필리가 브루클린 같아지는 느낌이야. 어떤 곳은 맨하탄 같아. 이상해지고 있긴 하지만, 변화를 볼 수 있을 만큼 느리게 변하고 있어.

내가 사는 곳에서 북쪽으로 두 블록 가면, 벽돌 연립 주택 하나가 있고, 다음에 네 개의 현대식 집이 나와. 계속 그렇게 반복이야. 옛날 필리 스타일은 진짜 변하고 있어. 사람들도 변하고 있는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여기로 이사 오지만 다 필리의 방식에 따라가고 있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든지 변하지 않을 거야. 사람들이 유입돼도 필리에 사는 우리들은, 그들이 우리 방식을 따라 하도록 만들 거야. 굴러온 돌 때문에 우리가 바뀌지 않아. 걔네가 우리 도시에 온 거거든.

그거 빼고는, 보드 타는 새로운 사람들이 생겨서 좋아. 우리랑 보드 타고 싶고 Muni에서 타고 싶어서, 여기로 이사 온다고 이야기하거든. 존나 짱이지. 하지만 우리 보면 그냥 “안녕”이라고 인사를 해. 광장 건너편에서 그냥 쳐다보고 있지만 말고. 우리도 그냥 보통 사람이야. 안녕이라고 하면 되잖아.

 

“굴러온 돌 때문에 우리가 바뀌지 않아. 걔네가 우리 도시에 온 거거든.”

 

 

넌 DGK에서 나가고 금방 Palace로 갔는데, 어떻게 알게 된 거야?

난 Palace 팀에 들어가려고 한 것도 아니었어. DGK는 그만두려고 하고 있었고 그냥 보드 스폰서가 필요했었어. 다시 보드를 사기 싫었지만, 사야 한다면 Palace 보드를 샀을 거야. 그래서 Chewy Cannon한테 “야, 보드 좀 어떻게 안 되나?”라고 했더니, 2주 동안 좀 이야기하고 알아보더니, Lev랑 Gareth[Palace의 공동 창업자]가 그냥 플로우 라이더가 아니라 팀으로 들어오라고 하더라고.

영광이었어. 벽돌로 머리를 맞은 것 같았어. 그런 말을 듣고, 그런 걸 문자로 본 다는 게. 나한테 큰 의미가 있는 일이야. 걔네가 필리에서 좀 지냈기 때문에 예전에 같이 타본 적이 있어. 되게 자연스러웠어. 걔네가 날 되게 잘 챙겨주고 있고,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

 

 

너랑 Jamal Smith랑 10년 동안 필리에서 같이 보드 탔는데, 이제 같이 그 영국 브랜드에 속한 게 진짜 미친 일인 것 같지 않아?

어렸을 때부터 Jamal을 존경했어. 단순히 같은 도시에서 보드를 타서가 아니라, 우리 가족들도 Jamal을 존경했거든. 내가 스케이트샵에 가는 걸 허락받을 수 있었던 것도, Jamal이 일하는 스케이트샵이었으니까 가능했던 거야. 우리 가독은 그를 믿었어.

그뿐 아니라, 어렸을 때 TV를 보면 Jamal이 나오기도 했어! On-Deman라는 프로그램에 나왔어. Fuel TV였나…뭐더라? Havoc TV! 어렸을 땐 스케이트 영상을 모르니까, On-Demand의 스포츠 섹션을 보기만 했거든. 거기 보면 끝에 스케이트보드가 잠깐 나오는 거 알지? Jamal은 그게 나한테 어떤 의미인지 몰랐겠지만, 어렸을 때 우리가 아는 사람이 TV에 나오는 건 엄청난 거였어.

 

“난 직장을 다닐 필요가 없어. 꿈을 이룬 거야. 존나 좋지, 그치?”

 

 

보드 덕분에 경제적으로 안정됐어?

경제적으로 존나 안정됐어. 야, 보드 타는 걸로 돈을 번다니. 난 직장을 다닐 필요가 없어. 꿈을 이룬 거야. 존나 좋지, 그치? 솔직히 믿기지 않아. 꿈이 아닌지 매일 꼬집어 본다니까.

 

 

그럼 집에서 독립한 거야?

내년에 독립하려고. 그래도 지금 집에도 월세를 내고 있어. 난 공짜로 가족 집에 얹혀사는 교외 꼬마 애가 아니야, 월세를 내[웃음]. 다른 집주인한테 내는 것보다 엄마한테 내는 게 낫지.

원래 19살 때 집에서 독립해서 자취했었어. 그런데 스케이트보드로 번 돈으로 한 건 아니고 알바를 뛰어서 그랬던 거야. 그러다가 여행을 많이 다니기 시작했고, 스폰서도 생겼지. 엄마가 그걸 보고, 집에 들어와서 월세는 조금만 내고 저축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셨어. 여행 돌아다닐 때도 좀 안정적이기도 하고. 일 년 동안 집에 4~5개월 밖에 없는데, 그 비싼 월세를 내겠어?

결국, 집을 세 네 채 살만큼 충분한 돈을 모아서 부동산으로 돈을 벌고 싶어. 어쩌면 스케이트보드 덕에 집 한 채를 살 돈을 벌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러면 그 집으로 또 네 채를 더 살 수 있게 되겠지. 보드는 확실히 나 삶의 다른 부분을 생각하게 만들어줬어. 부동산이나, 사업을 하는 거나 뭐든지 말이야. DC랑 나의 다른 스폰서들은 경제적으로 내가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도와줬어.

 

 

 

너는 너의 스케이팅을 예술에 비교하면서, 예술계의 커리어에 비교하면서 스케이팅의 커리어를 이야기하잖아. 예술과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 사이에서 균형을 찾을 수 있어? 적응하면서 커리어를 만들어 가면서.

어려워. 심지어 지금도 나보다 더 잘하는 애들을 보면서 “얘네들이 나보다 더 잘돼야 마땅한데”라고 생각해. 하지만 동시에 난 진심으로 마음을 다하고 사람들은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해 줘. 나의 성실함을 좋아해 주고. 내가 다른 사람들을 스케이트보드의 안과 밖으로 데려올 수 있고, 나의 커뮤니티에서 함께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나에게 투자하고 싶은 거야. 예술 세계와 같지.

그래서 너한테 그런 게 있으면 사람들이 돈을 줘. 그렇지 않다면, 스스로를 특별해지는 방법을 찾아야 해. 아니면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특별하게 만들게 보이도록 하거나. 나 스스로를 알아갈수록, 사람들도 내가 누구인지 알아봐. 더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투자하게 되는 거야.

그러니까 내면의 행복을 찾으면서 행복해지는 방법,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네 내면의 행복을 전달하는 것의 균형을 찾는 것 같아. 이 업계의 사람들이 나의 개성을 알아봐 주고 스스로 중심이 서 있으면, 그런 일이 벌어지겠지. 그렇지 않아서 돈이 생기든 안 생기든, 어쨌든 행복해지잖아.

 

“난 내가 뭐든 제대로 한다는 걸 알아. 난 우리 도시 출신으로 이 업계에서 성공한 두 번째 사람이야.”

 

 

그 점 때문에 스케이트보드 회사들한테 이용당하기 쉽다고 생각해?

응, 실제로 많은 회사들이 그래. 하지만 좋은 사람들은 널 이용해먹지 않기 때문에, 주변에 좋은 사람들을 두라고 말하는 거야. 그들은 너의 성실함을 알아볼 거야. 그리고 스케이트보드는 예술이기 때문에 네가 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어색할 수도 있어.

그래도 언젠가는 말을 해야 해. “난 매달 월급을 받아야 해, 아니면 너네 이번 캠페인 전체의 모델을 할 거야. 모델 일을 하면 돈을 받던데.”라고 말해야 할 수도 있어. 내가 500달러를 받을 순 없겠지만, 그 시간을 쓰고 60달러만 받을 수 있겠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두 시간을 쓴 건데. 결국 어디선가 부터는 시작을 해야 해. 스스로의 가치를 알아내야지. 아마 인생에서 제일 어려운 것일 거야. 쉽지 않지만 원한다면 할 수 있어. 내가 말했듯이, 뭔가를 사랑하면 돈이 생기든 안 생기든 할 거잖아. 단지 사람들이 널 이용하지는 못하게 하라고. 스스로 얼마큼 받아야 하는지 알아야 해.

 

 

 

그게 스케이트보드 업계의 딜레마야. 목소리를 내서 스스로의 가치만큼 돈을 요구하지 않으면 돈을 못 벌고, 자신의 입지에 대해 목소리를 내서 요구하면 건방지다고 낙인찍히니까. 그런 거 본 적 있지?

어. 거만하다고 오해하지. 거만함과 스스로의 가능성을 믿는 것(혹은 스스로에게 솔직한 것)의 차이는 스스로 일을 제대로 한다는 걸 알고 있을 때 생기는 거야.

난 내가 뭐든 제대로 해낸다는 걸 알아. 난 우리 도시 출신으로 이 업계에서 성공한 두 번째 사람이야. 건방지다고 할 수 있지만, 난 보드를 타기 전에는 미래가 없는 가난한 꼬마였어. 남서부 필리에서 사람들 머리가 깨지는 것도 봤어. 거기서 지금 내가 있는 곳까지 온 거야. 웃지 않을 이유가 없지.

내가 거만하다고 해도 상관없어. 결국 난 내가 뭘 뚫고 여기까지 왔는지 알거든. 난 스스로를 King이라고 부를 권리를 노력해서 얻었어. 너 스스로를 king이라고 불러봐. 내가 사람들을 지배해서 왕이라는 게 아니야. 이 도시에서 스케이트보드로 이뤄냈으니까 왕이라는 거야. 여기서 해내고 있거든. 스스로를 king이라고 불러서 스스로 특별하다고 느끼게 되면 난 그렇게 할 거야. 왜냐하면 그날 씨발 웃음이 나거든. 가끔은 그게 내가 필요한 전부야. 너를 웃게 만든다면 너도 그렇게 불러봐.

 

 

 

스케이트보드 아닌 일을 뭐뭐 해봤어?

이것저것 허슬했지. 자세히 말하기는 싫지만 스트리트는 스트리트야. 스케이트 물건들을 공짜로 받기 시작하면서 보드랑 신발을 팔았어. 구제 옷 가게에 가서 1달러까지 옷을 산 다음, 그걸 다른 가게에 10달러에 팔았어. 돈이 한 푼도 없고 굻었기 때문에 밥을 먹기 위해서 했던 거야. Postmates(미국판 배달의 민족 같은 것 – 땡큐젠켐)는 아직 없었던 때라,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전거 타고 음식 배달하는 것들은 없었어.

Nocturnal Skateshop에서 일주일에 5일 일하고, 가끔씩은 일주일 내내 일했어. Nocturnal에서는 12~8시까지 일하고 가끔은 11~9시까지 했지. 일을 끝내고 Love Park나 Muni에서 트릭을 배우면서 새벽 한 시까지 보드를 탔어. 난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내가 뭘 원하는지 스스로 알아. 절대 다른 것에 방해받지 않지.

 

 

코로나 시국 초기에 사회적 정의를 위한 국가적인 운동이 있었을 때, 너는 커뮤니티를 위한 무료 식사 배급에 열심히 참여했잖아. 어떻게 그렇게 하게 된 거야?

내가 한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왜 싫어?

쿨하지 않거든. 뭔가를 하려고 하면 그냥 하는 거야. 말할 필요 없어.

 

 

하지만 이미 한 일이고 지금도 하고 있잖아. 멋있는 것 같아. 말해줘.

그러니까, 우리 가족은 어려운 분들에게 최대한 베풀려고 해. 우린 아주 거친 도시에서 살고 있어. 나만 정말 어려운 시기를 버텨온 것뿐 아니라, 정말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알고 있어. 우리는 뭉쳐야 해. 내가 조금 상황이 좋고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으니까 예전보다는 더 베풀 수 있어.

이번 봄, 여름에는 코로나 때문에 보드를 많이 타지 못했어. 아무도 돌아다닐 수 없었기 때문에 집에 있었어. 그래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더 많이 볼 수 있었고, 난 도울 여력이 있어서 할 수 있는 만큼 한 거야.

 

 

스케이트 트립 다니면서, 마스크 쓰는 것에 반대하는 트럼프 빠돌이들, 코로나를 부정하는 이상한 사람들을 본 적 있어? 슈퍼마켓이나 주유소에서?

Bronze 투어에서 진짜 무서웠어. 그냥 호미들이 아니라, 어떤 브랜드 투어를 가본 게 처음이었어. 우리는 뉴욕 북부로 가서 펜실베이니아 State College로 가서 Jake Johnson을 만났어. 그런데 우리가 가는 곳마다 트럼프 깃발, 트럼프 깃발, 트럼프 깃발, 노 마스크, 트럼프 깃발, 트럼프 깃발, 노 마스크였지. 와, 씨발.

이 투어에서 Dougie라는 친구랑 나만 흑인이었는데, 내가 걔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아서 걔를 돌봐줘야 할 것 같았어. 그런데 나를 돌봐줄 나보다 나이 많은 흑인 형은 없었지. “씨발, 존나 빡센데”했지. 어디를 가든지 호미들한테 “나를 두고 가지 마. 내가 슈퍼마켓 갈 때도 옆에 있어줘. 여기 불안해. 집단으로 폭행 당하는 경우가 많은 지역이야.”라고 했지.

목숨이 조금 위험하다고 느꼈어. 마스크를 항상 쓰려고 하고, 손 세정을 하고, 믿을 만한 백인 친구를 옆에 뒀어. 모두가 트립 내내 나를 챙겨줬어. 내가 불편하지 않은지 봐주고. 그래서 불편한 상황에서도 그들 덕분에 안전하다고 느꼈어.

 

 

Muni의 K2 씬에 대해서 알려줘.

[웃음] 아직도 K2를 피더라. 그래도 예전만큼 보이진 않아. 예전만큼 주변에서 냄새가 나진 않아. 기차에서는 가끔 누가 존나 피워서 연기로 꽉 채워놓더라. 그래서 탔다가 바로 내리기도 해. 그렇지 않으면 나도 간접으로 하이 상태가 되거든. 존나 강해 그거. 응, K2는 아직도 주변에 있어.

 

 

해본 적 있어?

아니, 피우는 사람이랑 같이 있던 적은 있어. 어떤 여자랑 데이트를 하다가 떨을 샀거든- 떨이라고 생각한 걸 샀지. 걔가 말았기 때문에 국룰에 따라서 먼저 한 모금했어. 그러더니 바로 기분이 이상하다는 거야. 씨발 뭐지? 싶어서 나도 한 모금 해봐야겠다 싶었는데, 걔가 이거 이상하다고 하지 말라고 하더라고. 다행히 그 말을 듣고 난 하지 않았어. 그 친구가 괜찮아질 때까지 보살펴 줬는데, 몇 시간 걸렸어. 토하고 난리 났지. 너무 기분 나빴지. 그건 그냥 버렸어.

그러니까 떨이나 마약이든 뭐든지, 믿을 수 있는 사람한테 사야 한다는 거야. 웬만하면 떨만 하기를 추천하지만, 떨도 그래야 되. 잘못하면 이상한 게 걸릴 수 있거든. 그때 내가 그걸 빨지 않아서 다행이야. 또 그때 그 친구 옆에 내가 있어서 더 최악의 상황으로 가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

 

 

 

 

너는 예전부터 “팀이 곧 꿈이고, 꿈이 곧 팀이다”라고 말해왔잖아.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그리고 꿈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간 것 같아 지금?

Love Park에서 그 말을 하기 시작했어. 농담 같은 거였어. 우리를 돈독히 하고, 당시 아무것도 없지만 자부심을 느끼기 위해 한 말이야.

필리에서는 아무도 봐주질 않아. 우리 씬에 대해 아무 신경도 안 써. 그 말을 하면서 우리는 스스로 특별하게 느낄 수 있었어. 우리가 커뮤니티라는 것을 일깨워주고, 실제보다 스스로를 더 강하게 만들어줬거든.

지금은 훨씬 더 강해졌어. 훨씬 커졌어. 우리가 함께 지켜온 것들 덕분에 우린 인정을 받고 있어. 팀은 항상 꿈이고, 꿈은 항상 팀일 거야. 항상 그걸 지켜왔어. 그게 없었으면 우린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테니까. 그리고 우리가 뭉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걸 알았고, 정확히 그걸 해낸 거지.

 


 

출처: http://www.jenkemmag.com/home/2020/11/09/jahmir-brown-interview/
<THE JAHMIR BROWN INTERVIEW>, 2020.11.9.
Interview by: Zach Harris
Photos by: Mike Heikkila

 


 

6 thoughts on “Jahmir Brown 인터뷰”

  1. If there were some kind of official ranking of cities that have been most meaningful for skateboarding culture, Philadelphia would have to be real high on the list. and the tiles at Muni looking like they ve been hit by a meteor, the city is still producing top tier talent. Case in point: Jahmir Brown.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