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돌이 필르머 Anthony Claravall을 만나다

photo: jeff landi

 

모든 필르머들이 다 투어를 다니긴 해. Anthony Claravall이 특별한 점은, 투어가 끝나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거야. 20년 동안 여행을 하며 필르밍을 했는데, 십 년이 넘도록 집을 가져본 적이 없어.

47살 성인이 그렇게 자유롭게 사는 비결이 궁금했어. 그의 인생 이야기부터, 어떻게 411VM 필르머로 시작해서 이제는 바르셀로나, 중국의 새로운 스케이트 스팟 전문가가 됐는지, Anthony를 직접 만나서 이야기 해봤어.

스케이트보드 제품을 팔아서 돈을 보태고, 1달러짜리 음식만 먹고,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엔 VHS 야동을 만들어서 스케이터들이랑 돌려보던 것 등 떠돌아다니는 삶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줬어.

그의 말을 듣고 영원히 젊게 사는 방법을 배워보자.(그리고 카메라 뷰파인더로 야동을 보지 않아도 되는 우리는 복받은 거란 것도 잊지 마.)

 

 

 

20년 동안 떠돌아다니면서 필르밍을 했는데, 가장 오래 머무른 곳이 어디야?

2004년에 SF의 집에서 나와서 씨발 12년 동안 집이 없었어. 그러니까 SF겠지? 그런데 그때도 난 필르밍으로 먹고살고 있어서 항상 여행을 다녔지. 지금은 New Balance Numeric 아시아를 담당하고 있는데, 매주 비행기를 타.

 

그럼 창고에 짐 넣어놓고 여행 가방 몇 개로 살고 있는 거야?

응, SF에 있는 창고에 잡동사니를 넣어놨어. Hong Kong에 있는 친구 집에 신발, 보드, 옷 몇 가지를 놔뒀어. Bangkok에 있는 친구 집에도 똑같이 해놨어. Barcelona에 있는 친구 Thomas Winkle네 집에도 짐을 뒀고. 엄마 집은 New York이고, Joe Brook이 SF에 있고, Hong Kong에는 852 샵이 있고 대만에는 Delta Skateshop이 있어.

 

 

한곳에 정착할 생각은 한 적 없어?

이젠 정착을 한 것 같아. Hong Kong에 사무실이랑 집이 있긴 한데, 내가 거길 잘 안가. 한 달 동안 한 번의 주말만 거기서 지내. 자식도 없고 결혼도 안 했고, 그냥 스케이트보드지. New Balance 일을 하기 전에는 100% 여행만 다녔어. 긴 여행이면 방을 빌렸지만, 짧은 투어에서는 그냥 남의 집에 얹혀서 지냈어. Chocolate 투어를 갔다가 좆되는 Enjoi 투어를 갔다가 바로 씨발 Zero 투어를 이어서 다녔어. 매주 다른 호텔에서 지내곤 했어. 보통 그랬지.

 

“자식도 없고 결혼도 안 했고, 그냥 스케이트보드지.”

 

여행하면서 제일 돈이 없을 때가 언제였어?

처음에 411VM 필르밍을 할 때, 말 그대로 한 이슈 당 83달러밖에 못 벌었어. 한 이슈가 두 달에 한 번 나오는데. 몇 년 동안은 1달러짜리 밥만 먹으면서 버텼어. 필르머로서 공짜 휠, 티셔츠, 보드를 받으면, 그걸 팔았지.

보드랑 물건들을 아꼈다가 Brazil 투어를 가면, 거기 샵에 팔아서 몇 천 달러를 벌었어. 허슬이지. 허슬도 기술이 있어. 돈을 제일 많이 받을 수 있으면서도 제일 작은 물건은 Bones Swiss 베어링이야. 제일 이상적인 허슬이었지. 엄청 작고 가벼운 데다가 돈도 많이 받으니까.

Philly에서는 다들 8.25인치 보드에 55mm 휠을 탔는데, Brazil을 가면 다들 Stevie Williams처럼 되고 싶어서 7.5인치 보드에 50mm 휠을 탔어. 그들한테는 55mm 휠을 탈 수가 없었어. 그러니까 미리 조사를 해야 하는 거야. 그게 허슬이지.

MACBA에서 누가 다가와서 내 신발을 보면서 “그 신발 어디 거야?”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바로 신발을 벗어서 걔한테 팔고, 집에 갈 땐 양말만 신고 보드를 타고 갔지.

 

photo: kenji haruta

 

어렸을 때부터 많이 돌아다녔으니까 여행을 하게 된 것 같은데, 고향은 어디고 어디서 자랐어?

New York의 윗동네에서 컸어. 부모님은 필리핀 분들이고 미국에 오시고 3주 뒤에 내가 태어났어. 아빠가 펩시 콜라에서 일해서 Mexico City, London, Malaysia 등등 많이 이사를 다녔어. New York에서 중학교를 나오고, 고등학교 땐 Connecticut에서 1년 다니고, 아빠가 Malaysia로 직장을 옮기셔서 거기의 국제 학교를 다녔어. 아버지가 특별 휴가를 받으면 항상 New York으로 돌아가서 지냈어. 그게 “집”이었어.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에 가면서, 이젠 여행 갈 돈을 벌 수도 없고 다시는 여행 갈 수도 없겠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스케이트보드 필르밍을 시작하면서 길이 열리기 시작했어. Tampa Am이나 Make-A-Wish 투어 같은 걸 다녔으니까. 완전 새로웠어. 나한테 갈 거냐고 누가 물어보면, 무조건 간다고 했지. 한 번도 투어를 거절한 적 없어.

 

“그래서 바로 신발을 벗어서 걔한테 팔고, 집에 갈 땐 양말만 신고 보드를 타고 갔지.”

 

그럼 건수 있을 때마다 하면서, 결국 필르밍만해서 20년 동안 살 수 있었던 거야?

다른 것도 좀 하긴 했지. 필르밍 일이 없을 땐, 아무거나 다른 일 한 삼 개월 하다가 다시 돌아왔지.

411VM에 내가 필르밍하겠다고 제안을 했던 게 기억이 나. 유럽에 가겠다고. 당시 난 기차 티켓만 있으면 됐어. 유럽 간 김에 세 개의 도시에서 벌어졌던 세 콘테스트에 다 갈 수도 있고 그 도시들에서 스트리트 파트를 필르밍할 수 있었으니까. 411VM에서도 좋은 생각이라고 했고 나는 덕분에 그 기회를 잡았지.

선사시대 이야기 같지만 어린 친구들을 위해 411VM에 대해 이야기해주자면, 411VM은 당시에 가장 큰 스케이트보드 미디어였어. 5만 이슈씩 팔아치웠나 그랬지. 나중에 난 비행기 티켓을 결제할 수 있는 411VM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골드 카드도 생겼었어. 나도 돈을 좀 벌었고, 건강 보험같이 좋은 점이 많았지. 좆됐었어.

하지만 알다시피, 많은 게 변하고, 점차 사그라들면서 끝나버렸지. 하지만 필르밍을 하고 영상을 만드는 것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어. 그래서 난 다른 브랜드랑 일하면서 일을 뻗어나갔어. 처음엔 Barcelona 전문이었다가, 나중엔 Asia 전문이 됐지.

 

photo: rob g

 

네가 Barcelona가 스케이트보드의 메카라는 걸 처음 발견한 사람 중 하나라는데, 어떻게 발견한 거야?

1990년에 Joe Brook이랑 유럽 투어를 갔어. 벨기에에 가서 그곳 친구랑 보드를 탔는데, 걔가 자기 삼촌이 Barcelona에 살고 있는데 거기가 스케이트보드 타기가 최고라며 자기도 거기로 이사 간다는 거야. 그래서 Joe랑 거길 가보기로 했지.

1999년 당시의 Barcelona는 진짜 그 친구가 이야기한 대로였어. MACBA로 갔는데, 전혀 보드를 타지 않은 상태였어. 렛지에 왁스가 전혀 없었어. 사람들은 big four(큰 4계단)만 타고 있었어. Jamie Thomas가 거기서 뭘 하는 영상을 사람들이 봤거든. 우리가 MACBA에서 처음 간 건 아니지만, 왁스가 칠해지기 전에 갔긴 했었어.

Barcelona 지하철에 공짜 지도가 있었는데, 거기에 내가 스팟을 표시하고 어디 있는지 표시해놨거든. 그걸 다른 스케이터들한테 보여줬고, 걔네가 그걸 펜으로 따라 베껴갔어. 나중엔 사람들이 나한테 와서 지도 달라고 하더라.

 

아시아 곳곳의 스팟을 처음으로 알려준 사람도 너였지?

2002년에 아시아에 투어를 왔어. 말레이시아 항공에 700달러짜리 상품이 있었거든. 15일 동안 원하는 도시 15개를 갈 수 있는 거였어. 그걸로 411VM 투어를 갔어. LA에서 Singapore,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홍콩, 필리핀을 들렸어. 각각 2~3일 정도씩 있었어.

나는 홍콩은 처음이었는데, 중국이 보드 타기 진짜 좋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거든. 가서 보니까 진짜 씨발 미친 곳인 거야. 그래서 팀 매니저, 친구들이랑 다른 스케이터들한테 이야기했지. 파트를 찍는데 렛지를 타고 싶으면 중국을 가라고. 그 뒤 모든 영상에 중국 스팟이 나오게 됐지.

 

프로 필르머로서 제일 오래 활동한 사람 중 하나가 너라고 할 수 있지?

RB(Umali)도 나랑 비슷하게 찍었어. 걘 95년인가 96년에 대학을 갔거든. 그 뒤 많은 필르머들이 생겼어. Greg Hunt처럼 말이야. 내가 처음 필르밍을 시작할 때, 걘 Stereo의 Am 라이더였어. 걔는 최고의 필르머야. Ty Evans도 짱이지.

좀 다른 게 있어. Ty Evans는 시작부터 필름 메이커였어. 걘 영상을 만드는 사람이었고, 난 단지 트릭을 찍는 사람이었어. 난 단지 필르밍하는 걸 사랑했어. 그러다가 2009년에 LRG 영상 Give Me My Money, Chico를 내가 만들었어. 그제야 모든 필르머가 직접 자기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느꼈지. 그때 이미 나는 늦은 감이 있었어.

 

photo: kenji haruta

 

야동 중독자라는 소문이 있던데, 진짜야?

[웃음] 투어를 갔을 때 VHS 비디오에 야동을 찍어서 갔어. Hi-8 카메라로 찍은 야동 믹스 테이프가 있었어. 제일 좋은 부분만 모은 거지. 베스트 트릭만 컴필레이션 영상 같은 거지.

야동 믹스를 만들어서 Frank Gerwer나 다른 친구한테 주면, 걔들이 그걸 복사하고 또 복사했어. 테이프 하나 계속 돌고 도는 거야. Long Island에 사는 Frank의 친구가 그걸 Claravall Butters라고 부르더라. 참, 씨발 이젠 시대가 변했지. Pornhub이 있잖아.

난 항상 여행하고 돌아다녔으니까, 뭐 다른 방법이 있었겠어? 아이폰이 없었으니까, 비디오테이프에 찍어놓고 그걸 뷰파인더로 봤지.

 

딸딸이 치느라 약속에 늦게 나온다는 소문이 있던데?

난 머리를 20년 동안 밀고 지냈어. 샤워할 때 머리를 미는 데에 시간이 많이 걸려. 그 이야기를 한 거야.

 

제일 좋아하는 포르노 스타는 누구야? 과거나 현재나, 아니면 전체에서?

와, 어디서 시작해야 할까. 씨발, 장난 아니지. [웃음] 항상 변해. 알지 모르겠지만 Emma Mae라는 배우가 있어. 불행히도 나중에 성형 수술을 좀 한 것 같은데, 예전엔 진짜 최고였어. 포르노의 Jason Jessee였어.

 

 

너처럼 필르밍을 커리어로 오랫동안 할 수 있는 팁을 준다면?

스케이터의 에너지에 맞추려고 노력을 하고, 최대한 프로페셔널이 되어야 해. 필르밍의 비결은, 필르밍을 하고 있지 않는 것처럼 해야 한다는 거야. “씨발, 지금 트릭을 하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같은 느낌을 상대방이 절대 받지 않게 해야 돼. 정신과 의사랑 환자의 관계랑 비슷한 거야. 버텨서 이 친구가 정말 트릭을 해낼 때까지 보는 거야. 다섯 번 만에 할 수도 있고, 20번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다음에 올 수도 있는 거고.

물론 모두랑 바이브가 맞을 순 없지. Rodrigo TX랑은 영상 파트를 20개를 같이 만들었어. 난 그 친구가 보드를 타는 방식을 이해하고 뭘 하고 싶은지 알아. 걔가 한 번 “씨바, 해보자”라고 하면 정말 100% 하는 스타일이라, 난 항상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 각자 하는 스타일이 다르지. 어떤 사람한테는 내가 “야, 씨발, 해버려. 이번에 타자!”라고 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나한테 아무 말도 하지 마.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넌 잘 찍기나 해.”라고 하는 스케이터들도 있으니까.

 

“비결은, 필르밍을 하고 있지 않는 것처럼 해야 한다는 거야”

 

스케이터를 위해서 뭐든지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 난 지구상 모든 나라를 다 다녀봤고 떨도 준비해놨어. 걔네가 뭐가 필요한지 알고 있거든.

필르밍을 한다는 게 단순히 녹화 버튼을 누르는 게 다가 아니야. 스팟이 있어야 하고 트럭이 부서지면 어떻게 할지 계획이 있어야 하고. 며칠 동안 뛰어내렸으니까 어디 가서 좀 쉬어야 할 수도 있으니 마사지를 해줄 수도 있고.

투어를 제대로 다녀오려면, 그렇게 찍는 행위 외에도 할 일이 많아. 그런 건 누가 가르쳐줄 수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눈치 같은 거야. 잘 들어주고 이해해주는 거지.

요새는 별로 상관이 없는 것 같기도 해. 아무도 그렇게 필르밍하지 않아. 이젠 카메라 다섯 대가 대기하고 있고 씨바 드론도 있어. 아니면 그냥 아이폰을 주고 “이거 좀 찍어줘”할 수도 있지. 필르밍도 많이 변했어.

photo: kyle camarillo

 

사진이랑 영상을 찍을 때, 필름이 디지털보다 좋은 것 같아?

당연하지. 컴퓨터나 TV에서 볼 때 달라.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큰 화면은커녕 다 아이폰에서 인스타그램으로 영상을 보지. 그러니까 의미가 없어져. 내 친구 중에 오직 필름으로만 영상을 찍는 친구도 있는데, 걔조차 필름을 현상하고 스캔해서 인스타그램에 올려. 그러니까 씨바, 무슨 차이인 거지?

그런데 그 과정이나 창조하는 것 자체가 특별하다면, 그것도 멋있는 거야. 그래도 나한텐 디지털 사진도 필름 사진이랑 완전히 똑같아. 어떻게 하느냐의 차이일 뿐이지. 도구일 뿐이잖아. VHS를 봐. 우리는 필름으로 찍고 싶었지만, 이제는 VHS가 하나의 룩이 됐잖아. 필터지. 사람들은 이제 Palace 영상 같은 VHS 영상을 만들더라. 아이폰으로 찍어도 그것보다 퀄리티가 좋아. 페티시가 된 건가?

VX1000는 미친 페티시가 됐어. VX1000 문신을 한 애들도 있어. 난 100% 장담하는데, 아니, 1000% 장담하는데 4:3 비율은 존나 중요해. 어안으로 찍을 때 4:3 비율에서 사람의 몸이 더 멋있어 보여.

 

photo: kenji haruta

 

몇 십 년 동안 떠돌아다녔는데, 한곳에 정착할 계획 있어? 언제까지 그럴 계획이야?

내 꿈은 혼자 죽는 거야. [웃음] 싱글로서 하고 싶은 걸 마음대로 하는 자유가 중요해. 갑자기 주말에 무슨 건수가 생기면 바로 그냥 비행기를 탈 수 있어. 동반자가 있고 연애를 하는 것도 엄청난 거지만, 비가 오는 일요일에는 잠을 자고 내 걱정만 하면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정말 행복해.

이기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모르겠어. 난 내가 가보고 싶은 곳은 정말 다 가보고 하는 말이거든. 가고 싶은데 못가본 곳은 딱 하나뿐이야. 쿠바.

 


 

출처: http://www.jenkemmag.com/home/2019/07/01/meet-anthony-claravall-nomad-skate-filmer/
<MEET ANTHONY CLARAVALL, THE NOMAD SKATE FILMER>, 2019. 7. 1.
Interview by: Ian Michna
Photos courtesy of Anthony Clarav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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